비 젖은 초가와 굴뚝 연기 너머로: 순천 낙안읍성
- Sangwon Jung
- 2024년 6월 23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일 전
우리나라에는 보존이 잘된 3대 읍성이 있다.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이다. 이 중에서 오늘은 낙안읍성을 다녀올 생각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도 먼 데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30여 년 전 장승을 찾아 전국을 떠돌 때 잠깐 들러본 게 전부라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장소다.
그러다 큰마음 먹고 휴가를 냈다. 진주에 사는 동생이 부모님을 모셔주기로 해서 3박 4일 일정으로 순천행을 결심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좋았던 날씨가 내가 잡은 일정 내내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온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리어 비가 오면 읍성의 분위기나 운치가 한층 더 좋아질 것 같았다. 거기다 꽃놀이를 즐기는 상춘객도 적을 듯해서 강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진입부터 내 예상은 여락없이 깨졌다. 엄청난 차들로 순천까지 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렸다. 원래는 익산에 볼일이 생겨 잠시 들른 뒤 미륵사지를 둘러보고 순천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륵사지는 꿈도 못 꾸고 익산에서 일을 본 뒤 곧바로 순천을 향해 달렸다.
일정을 금요일 출발로 잡은 것부터 실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처럼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서울-부산보다 먼 거리도 당일로 충분히 왕복하며 촬영하고 왔는데, 이놈의 차들 때문에 시간을 길바닥에 기꺼이 깔고 가는 게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도 별수 없으니 적응해 가야 할 일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야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순천은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30년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실감 났다.
순천 일정 둘째 날 마침내 낙안읍성을 방문했다. 다행히 이날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낮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 풍경이 도리어 읍성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져 좋았다. 비가 내린 직후라 돌담과 성곽, 그리고 초가지붕의 질감이 한층 더 촉촉하게 살아나 마음에 와닿았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 일찍 도착했다. 오전 9시 개장 시간에 맞춰 잠시 기다린 뒤 곧바로 입장했다. 생각만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곽 위로 올라가 한 바퀴를 크게 돈 뒤, 아래로 내려와 읍성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곳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읍성 안팎에 있는 집들이 실제 주민들이 생활하는 보금자리라는 점이다.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과는 사뭇 다른 생동감이 느껴진다. 미국 콜로라도에 가면 '타오스(Taos)'라는 원주민 마을이 있다. 이곳 역시 낙안읍성과 비슷하게 원주민들이 전통 가옥을 지으며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이고,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진 찍는 분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낙안읍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포인트에는 많은 분들이 삼각대를 받쳐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포인트라고 소문난 곳에는 장소를 막론하고 늘 사진가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이런 풍경에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다 풀어놓을 이야기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읍성의 분위기는 어릴 적 찾아간 외갓집 동네에서 저녁밥을 지을 때 굴뚝마다 피어오르던 연기가 안개처럼 나지막이 깔리던 차분한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읍성 자체도 크고 넓을 뿐만 아니라, 안팎으로 형성된 마을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 오전 9시부터 둘러본 시간이 어느덧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 안에는 여러 체험 공간도 잘 갖추어져 있었고,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풍경들도 반가웠다.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가, 세종 9년에 방어를 보강하고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성 안에는 100채에 육박하는 초가집과 옛 성곽, 동헌, 객사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 선조들의 삶과 숨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이런 마을이 좀 더 많이 조성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어본다.
여기까지 온 김에 30년 전 촬영했던 옛 장승이 생각나 찾아보기로 했다. 읍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동네 분위기가 너무 많이 바뀐 데다 예전에 어떻게 찾아다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네에 인적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까 싶어 차를 돌리던 순간, 장승 한 기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여장군이었는데, 짝을 이루어야 할 천하대장군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장승의 자태 역시 예전 같지 않았다.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속세에 물든 듯 변질된 모습이 씁쓸함과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안은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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