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4박 5일 사진 여정 ③] 청간정 해변에서 마주한 동해와 빨간 등대, 하얀 등대의 비밀
청간정 누각에서 데크 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서자, 비로소 시야가 거침없이 열리며 푸른 동해가 품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동해 바다였다. 답답했던 가슴속 응어리가 일순간에 씻겨 내려가듯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밀려왔다.
앞서 들렀던 능파대 역시 눈앞이 망망대해였지만, 기기묘묘한 타포니 바위들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바다 자체를 온전히 품지는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백사장에서 마주한 수평선과 부서지는 포말이 유난히 더 깊고 청량하게 눈에 들어왔다.

망원 렌즈로 시선을 멀리 던져보니 갯바위 주변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왜가리 한 마리가 보이고, 그 너머 방파제 끝자락에는 정답게 마주 서 있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해안 포구를 다니다 보면 어디서나 흔하게 마주치는 풍경이 바로 이 '마주 보고 선 붉은 등대와 흰 등대'다. 오래전 한국에 살 때는 무심코 지나쳤고, 미국에 머물던 시절 태평양과 대서양의 수많은 해안을 돌며 만났던 등대들은 대개 홀로 우뚝 서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늘 이 마주 선 두 등대의 사연이 마음 한편에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예전에 제주도를 여행할 때 현지에서 만난 분에게 "왜 등대가 늘 빨강과 하양으로 짝을 지어 서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꽤 뜻밖이었다. 우리 고유의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색이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시골길이나 골목 어귀 무당집 처마에 늘 나부끼던 흰 깃발, 붉은 깃발의 배치가 떠올라 한동안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최근 들어 사진과 글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준 AI에게 슬며시 물어보았더니, 민속적 상상력은 흥미롭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엄격한 '국제항로표지(IALA) 체계'에 따른 것이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입항 기준)
우현 표지 (빨간 등대): 배의 오른쪽(우현)에 위험 요소나 장애물이 있으니, 등대의 왼쪽으로 운항하라는 신호다.
좌현 표지 (하얀 등대): 배의 왼쪽(좌현)에 암초나 얕은 수심이 있으니, 등대의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안내다.
즉, 두 등대 사이의 바닷길이 선박이 안전하게 지나다닐 수 있는 안전한 항로(수로)의 폭을 가리키는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거대한 등대 대신 부표나 작은 등표, 말뚝형 표지로 이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처럼 아담한 쌍둥이 등대가 정답게 마주 선 풍경이 덜 보였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보듯 해안 절벽 위에 홀로 우뚝 솟은 거대한 등대(유인등대)는 배들에게 "이곳이 어느 육지 해안인지, 근처에 위험한 지형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광역 해상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알고 바라보니 바다 위에 서 있는 등대들이 저마다 뱃사람들에게 건네는 치열하고도 다정한 신호로 다가왔다.

저 멀리 보이는 방파제는 천학정 바로 곁에 있던 교암항 쪽이다. 일반적인 원통형 등대들과 달리 그 형상이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바다 생물인 오징어의 유려한 몸선을 본뜬 듯도 하고, 파도를 가르는 돛단배의 날렵한 깃발 같기도 해 절로 줌 렌즈를 당겨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푸른 바다를 무대로 한참 동안 도도하게 깃을 다듬는 왜가리와 렌즈 너머로 눈씨름을 벌이고, 방파제 등대들의 색 대비를 담아내며 동해의 바람을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가슴속 묵은 때를 시원하게 털어냈으니, 이제 미뤄두었던 다음 목적지인 백섬 해양 전망대를 향해 다시 차에 오른다.
💡 포토 트래블 상식
항로표지 상식: 한국이 속한 IALA B 방식 해역에서는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 우측이 붉은색, 좌측이 흰색(또는 녹색)입니다. 야간에는 빨간 등대는 붉은 불빛을, 하얀 등대는 녹색 불빛을 깜빡이며 어두운 밤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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