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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4박 5일 사진 여정 ⑤] 230만 년 세월이 빚어낸 해안단구,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을 걷다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1일 전
2분 분량

이번 여행의 가장 든든한 나침반은 단연 인터넷이다. 검색창에 지역 이름과 '가볼 만한 곳'을 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다.  다만 내 검색 방식은 글자보다 '이미지'를 먼저 훑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진가로서 현장의 빛과 구도, 지형적 특성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두어야 현장에 섰을 때 당황하지 않고 온전히 피사체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마음에 새기는 "알아야 사진한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준비 과정인 셈이다. 대략적인 풍경을 눈에 익혀두어야 비로소 나만의 사진적 방향과 시선이 선다.   

동해시 숙소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의 첫 행선지로 낙점한 곳은 바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었다.   



오랜 세월 군사작전 지역으로 묶여 있어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천혜의 비경.   

'정동(正東)'은 옛 한양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위치한다는 뜻이고, '심곡(深谷)'은 깊은 골짜기 속에 들어앉은 마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여기에 지형의 형세가 마치 동해를 향해 커다란 부채를 활짝 펼쳐놓은 모양을 닮았다 하여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라는 어여쁜 이름이 붙었다.   


2016년 10월 첫 개통 이후 숱한 사랑을 받았으나, 거센 태풍 피해로 한동안 문을 닫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23년 복구를 거쳐 재개장한 뒤, 2024년에는 정동항 방면으로 640m 구간을 연장하며 총길이 3.01km의 온전한 해안 탐방로를 완성했다.   

과거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 노약자나 무거운 장비를 든 이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꽤 높았는데, 정동항까지 무장애 해상 데크길이 신설되면서 누구나 수월하게 동해의 비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숙소가 있는 묵호에서 멀지 않아 이른 아침 여유롭게 채비를 마치고 심곡항으로 달렸다. 개장 시간인 오전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닿았지만, 아담한 포구는 출항을 준비하는 손길들로 벌써 활기가 넘쳐났다. 넓은 주차장과 깔끔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길을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데크길로 발을 디뎠다. 편도 3km 남짓이니 왕복 6km 정도의 걸음. 계단이나 가파른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해상 데크길이라 카메라를 메고도 부담이 전혀 없었다.   



요즘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생겨난 흔한 잔도길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깎아지른 절벽과 시퍼런 파도를 바로 곁에 끼고 걷는 맛은 확실히 격이 달랐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옛 군 경계초소는 이곳이 오랜 세월 분단의 긴장을 품고 닫혀 있던 땅이었음을 묵묵히 증명한다.   


과거 한국에 살던 시절, 바다를 워낙 좋아해 주말이면 가족들과 훌쩍 강릉이나 속초로 달려가 모래사장에 발을 담그곤 했다. 그때 내 기억 속 동해는 그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넓고 부드러운 백사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바다부채길에서 마주한 동해의 얼굴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낯섦과 웅장함 그 자체였다.   

약 200만~250만 년 전 한반도의 지각 변동으로 땅이 솟아오르며 형성되었다는 국내 유일의 최장 '해안단구(천연기념물)'. 수백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무게는 쉬이 실감 나지 않지만, 거센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기암괴석들의 표정은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조각품이었다. 백사장의 부드러운 바다만 보아왔던 내게, 날것 그대로의 거친 숨결을 뿜어내는 이 암석 해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묘한 형상의 투구바위와 부채바위를 지나 파도 소리를 길동무 삼아 걷다 보니, TV나 사진으로만 보아 익숙하던 해안 절벽 위 거대한 유람선 모양의 썬크루즈 리조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동진과 이어지는 정동항에 다다른 것이다.   

절벽 위로 아찔하게 솟은 높은 계단과 투명 강화유리 전망대가 올려다보였지만, 굳이 고소공포증을 무릅쓰고 올라갈 이유는 없었기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래에서 그 독특한 풍경을 렌즈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심곡항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혹자는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겠냐고 묻겠지만, 사진가에게 길이란 어느 방향을 향해 걷느냐, 해의 각도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빛과 풍경을 선물하는 법이다. 되돌아가는 3km의 걸음 역시 망설임 없이 기분 좋은 출삿길이 되었다.   


심곡항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이제 드라마와 해돋이의 상징 같은 장소, 정동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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