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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조선의 성곽: 서산 해미읍성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3년 10월 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일 전

충청남도 서산에 가면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읍성이 있다. 바로 '해미읍성'이다. 조선 태종 때 축성을 시작해 세종 때 완성된 곳으로,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한국 천주교 3대 성지 중 하나로, 박해 시절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당하고 순교한 아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우리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 주로 다니는 곳도 이런 사적지들이다. 그중에서도 해미읍성은 귀국 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장소가 되었다.


주중에 차를 끌고 이동하니 길도 막히지 않아 서울에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어 좋다. 넓은 주차장과 잘 정돈된 읍성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정화해 주는 듯하다.


이곳에서 가장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위풍당당한 소나무들의 자태였다. 우리 민족 특유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잔뜩 품은 듯한 나무들이 나를 자꾸만 이곳으로 발걸음하게 만든 듯하다.


지금은 공식 명칭이 '서산 해미읍성'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참고: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소개 글]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 17년(1417)부터 세종 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곳에 옮기고자 축성되었다. 효종 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남아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된 후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왔다. 이후 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 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 터가 확인되었으며, 관아 외곽 석장 기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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