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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스콜(Squall)을 뚫고 도착한 플로리다, 그리고 방탄유리 모텔의 긴박한 밤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4년 8월 2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3일



🌲 답답한 수목 장벽과 담뱃값의 기이한 경제학

버지니아에서 조지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내내 '키 큰 나무들의 장벽'이었다. 도로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때문에 사방의 풍경이 완벽히 가려져,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답답한 드라이브가 이어졌다.


지루함 속에서 소소한 놀라움을 준 것은 주마다 천차만별인 물가였다.


"당시 2003년 내가 살던 서부 워싱턴주에서는 한 갑에 5달러 남짓 하던 말보로 담배가, 버지니아나 캐롤라이나 같은 동남부로 가니 2달러 70센트라는 놀라운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각 주마다 부과하는 지방세와 담배세의 오묘한 격차를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미국의 담뱃값은 가히 폭등했다. 현재 미국 전국 평균 담뱃값은 10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뉴욕시 같은 대도시에서는 담배 한 갑에 자그마치 15~18달러(한화 약 2만 원 이상)를 지불해야 한다. 23년 전 2~5달러였던 담뱃값을 떠올려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각 주마다 다르게 부과되는 세금과 세원 스티커 시스템을 보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연방 국가가 지닌 다채롭고 독특한 사회적 구조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 조지아의 장대비, 천둥번개, 그리고 스콜

섭씨 32도를 넘어서는 후텁지근한 사우스캐롤라이나 휴게소를 지나 조지아주로 접어들 무렵, 차창 밖으로 무시무시한 비소리가 들려왔다. 조수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다 깨어보니,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센 장대비와 함께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차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소나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차들이 갓길 밖으로 빠져 있는 등 유난스러운 동남부 특유의 스콜(Squall) 기후였다. 그러다 조금 지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멀쩡해지고, 저 멀리 먹구름 아래로만 비가 퍼붓는 이국적인 기상 천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 플로리다 진입과 잭슨빌 외곽의 어둠

마침내 플로리다(Florida) 주경계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잠잠해지고 넓은 도로와 함께 남부 특유의 이국적인 정취가 반겨주었다.


늦은 밤이라 인포메이션 센터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밤 9시가 다 되어 마침내 미리 예약해 둔 플로리다 첫 도심 잭슨빌(Jacksonville) 외곽의 숙소 타운에 들어섰다. 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예약했던 곳은 바로 '모텔 6'. 체크인을 위해 오피스로 들어서자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놓은 카운터에서 흑인 할머니 한 분이 맞아주었다. 딸 예지가 웃으며 에어컨 바람을 줄여달라 싹싹하게 부탁하고 키를 받아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 얼음 자판기 앞의 씁쓸한 발견과 '방 배정'의 비밀

에어컨이 춥게 틀어진 오피스를 나와 배정된 방으로 걸어가는데, 순간적으로 '이거 뭔가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여행 내내, 특히 서부에서는 마주치기조차 힘들었던 흑인들이 숙박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조차 평범한 여행객의 행색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얼음을 가지러 아이스 머신이 있는 쪽으로 갔을 때였다. 무심코 바라본 우리 건물의 반대편 동(棟)에는 온통 백인들만 투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상황의 퍼즐이 맞춰졌다. 모텔 측에서 아시아인인 우리 가족을 백인 투숙객 구역에서 배제하고, 유색인종들이 모여있는 건물 쪽으로 의도적인 방 배정을 한 모양이었다. 허름한 정크 모텔도 아니었는데 버젓이 벌어지는 듯한 이 은밀한 인종차별적 처사에 불쾌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행여나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봐 속내를 감추고 아내에게 툭 농담을 던졌다.

"미국 흑인들 다들 플로리다로 놀러 와 있어서 다른 주에서는 통 못 봤었나 보네."

나의 뼈 있는 농담에 아내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 방탄유리 창구와 총을 찬 보안요원의 등장

그런데 방으로 걸어가는 순간, 여행자의 직감이 묘한 경고음을 울렸다. 서부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낯선 분위기 속에, 밤이 깊어지자 모텔 오피스 문이 철컥 잠기더니 권총을 찬 보안요원이 모텔 주변을 순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모텔 오피스는 문을 완전히 닫아걸고, 야간 손님을 위해 방탄유리와 작은 구멍만 뚫린 조그만 비상 창구로 운영 체제를 바꾸었다. 평소 치안이 얼마나 불안했으면 숙소에 이런 방탄 시스템까지 갖추어 놓았을까 싶어 섬뜩한 긴장감이 엄습했다.


🎆 7월 4일 광란의 밤, 태연한 척 지켜낸 아빠의 밤

하필이면 오늘은 술과 행패, 야간 폭죽 소동으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7월 4일 독립기념일 밤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모텔 주변과 하늘 위로 요란한 폭죽 소리가 굉음을 내며 터져 나왔다. 창문 밖으로 자꾸 시선이 가고 마음은 금방이라도 차를 빼 나가고 싶을 만큼 조마조마했지만, 곁에 있는 아이들이 불안해할까 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척을 해보였다.


축제의 환호와 묘한 긴장감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플로리다 잭슨빌에서의 첫날 밤.

2003년 7월 4일, 미 대륙을 횡단하던 사진가 가족의 밤은 요란한 폭죽 소리와 방탄유리 오피스의 이국적인 풍경을 이정표 삼아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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