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퇴근길 뉴요커의 무표정, 로버트 프랭크의 프레임과 뉴욕의 안녕
- Sangwon Jung
- 2024년 7월 1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 박물관의 바가지 물가와 국제사진센터(ICP)의 해프닝
자연사 박물관의 거대한 규모에 눌려 예정된 시간을 훨씬 초과하고 말았다. 박물관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는데, 리필조차 안 되는 음료수와 시중가의 두 배가 넘는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에 혀를 내둘렀다. 뉴욕은 진정 숨 쉬는 것 빼고는 전부 돈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지나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는 곳마다 철저한 소지품 검사가 이루어졌다. 9·11 테러 이후 도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삼엄한 긴장감 속에서 뉴요커들은 대체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거리 모퉁이마다 테러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이나 무역센터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집과 프린트를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사진가로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국제사진센터(ICP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를 찾아 센트럴 파크 주변을 한참 걸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건물이 비어있고 이사를 가버린 게 아닌가! 출국 전 인터넷으로 주문해 들고 온 뉴욕 관광안내도가 최신 정보를 반영하지 못한 오기(誤記)였던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허무하게도 우리가 묵고 있는 맨해튼 한인타운 호텔 바로 근처로 이전해 있었다. 온종일 걸어 다리가 부르튼 상황에서 겪은 허탈함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당시 센트럴 파크 근처에서 미드타운으로 이전했던 국제사진센터(ICP)는, 세월이 흐른 2026년 현재 예술과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인 맨해튼 하동부 Lower East Side(Essex St)의 현대적인 갤러리 빌딩으로 재이전하여 세계 사진가들의 사랑받는 성지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 지하철역 피라미 사기꾼과 아이들의 눈썰미
애들도 우리도 이미 체력이 바닥나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호텔까지 바로 가는 지하철역을 찾아 한참을 걸어 들어갔는데, 매표 기계들이 작동 불능이었다. 알고 보니 지류 티켓 잔량이 전부 소진되어 발생한 오류였다.
덥고 후텁지근한 지하도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한 젊은 현지 청년이 다가와 남는 표 3장이 있으니 사라고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아이들이 "아빠, 절대 사지 마세요! 속이는 거예요!"라며 난리를 쳤다.
설마 몇 불 안 되는 돈 때문에 속일까 싶어 아내에게 표를 확인하고 사라고 했는데, 잠시 후 아내와 그 청년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내가 확인해 보니 3장 중 2장은 이미 사용이 끝난 쓸모없는 폐표였고, 단 1장만 유효한 표였던 것이다!
4달러 때문에 사람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아내가 유효한 표 1장 값만 지불하자, 어설픈 사기꾼 청년은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나보다 세상을 훨씬 더 영악하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 아이들 앞에서 씁쓸하고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침엔 경찰관이 길을 잘못 일러주어 우리를 헤매게 하더니, 저녁엔 피라미 사기꾼 청년이 씁쓸함을 선사해 준 셈이었다.
📷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그리고 뉴욕과의 작별
씁쓸함을 안고 올라탄 퇴근길 지하철 안은 퇴근하는 뉴요커들로 빼곡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무표정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공장에서 자동으로 생산되어 나오는 무생물처럼, 서로 시선을 피한 채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 무채색의 피로한 표정들 위로 사진 거장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대표작 〈미국인들(The Americans)〉 속 차가운 프레임과,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 카메라에 담아냈던 거칠고 역동적인 뉴욕 거리의 피사체들이 아지랑이처럼 오버랩되어 스쳐 지나갔다. 사진집 속에서 보았던 뉴욕의 진솔하고도 서글픈 진짜 생얼굴을 눈앞에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말이 3박 4일이지 실질적으로는 이틀 동안 도보로 훑어본 짧은 뉴욕 일정이었다.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을 이틀 만에 다 담아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욕심이었으리라.
비록 원하던 미술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화려한 마천루 뒤에 숨겨진 뉴욕 사람들의 따뜻함과 냉정함, 그리고 도시의 살아있는 숨결을 가족과 함께 체감한 것만으로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자산이 되었다.
훗날 여러 계기와 인연으로 뉴욕을 자주 다시 찾게 되었다. 그때마다 이 거대한 도시는 새로운 프레임과 깊이로 나를 반겨주었다. 전 세계의 경제와 문화, 예술이 도광양회처럼 집결된 곳. "뉴욕을 보지 않고 미국을 말하지 말라"던 누군가의 명언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우리 가족의 뜨거웠던 첫 뉴욕 대륙 횡단 도보 여정은 정겨운 추억 속으로 피날레를 고하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