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센트럴 파크의 엉뚱한 길,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에서 느낀 격세지감
- Sangwon Jung
- 2024년 7월 1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 경찰의 엉뚱한 안내와 센트럴 파크의 아침
뉴욕에 들어온 지 어느덧 삼 일째 아침이다. 어제 온종일 발바닥이 부르터라 걸었던 터라 오늘 아침 아이들이 잘 일어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쌩쌩하게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오늘 일정은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미국 자연사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국제사진센터(ICP),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을 훑어보는 문화 탐방 코스다.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 근처에서 내려 지도를 펴들었다. 좀 더 정확히 찾아가려고 마침 지나가던 경찰관에게 길을 물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일러준 길은 우리가 지도를 보고 예상했던 방향과 정반대였다. 경찰의 말이 맞겠지 싶어 그가 시키는 대로 먼 길을 돌아갔더니, 결국 완벽하게 엉뚱한 곳으로 인도된 것이 아닌가!
그 유명한 센트럴 파크 입구를 물어보았고 지도까지 보여주었건만 정반대 길을 일러주다니, 순간 솟구치는 화와 함께 씁쓸한 인종차별적 오기마저 느껴졌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이 보편화된 요즘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2000년대 초반 길찾기 에피소드였다.)
비록 길은 돌아왔지만 덕분에 뉴욕 도심의 또 다른 골목 풍경을 구석구석 눈에 담으며 다시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초여름 아침이었지만 후텁지근한 더위 속에 산책과 명상, 운동, 그리고 잔디밭 선탠을 즐기는 뉴요커들로 가득했다.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선 이 거대한 녹지 공간은 뉴욕 시민들의 진정한 안식처였다. 벤치에 잠깐 앉아 쉬노라면 덤벼드는 뉴욕 모기 때문에 금세 일어서야 했지만 말이다. 워낙 넓은 공원을 걷느라 아이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살살 달래고 때론 윽박도 지르며 공원을 반쯤 돌고 외곽의 박물관으로 향했다.

🦕 미국 자연사 박물관과 아시아관의 탄식
공원 서쪽에 위치한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은 순전히 우리 아이들, 특히 막내 도희의 교육과 흥미를 위해 정한 코스였다.
매표소 앞의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겨우 입장에 성공했다. 웅장한 공룡 공중 뼈대와 압도적인 전시 규모, 어른들까지도 몰입하게 만드는 정교한 생태 디오라마 시설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문화적 감탄도 잠시, 아시아관에서 예지와 도희가 애타게 찾던 '한국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 가족의 마음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거대한 전용 전시실을 화려하게 차지하고 있던 중국과 일본관에 비해, 한국의 전시 공간은 마네킹으로 만든 글 읽는 선비 하나와 바느질하는 아낙네 모습의 자그마한 모형이 전부였던 것이다!
🇰🇷 반만년 역사와 20년 뒤 찾아온 격세지감
속에서 솟구치는 안타까움과 실망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면서 정작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뉴욕의 대표 박물관에는 고작 마네킹 두 점이 전부라니!
'한국 방문의 해'니 뭐니 하며 국내에서 우리끼리 고함을 지르고, 외국인이 김치 한 조각 맛보면 전 세계가 한국을 좋아하는 양 호들갑을 떨던 겉치레식 홍보의 씁쓸한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한 반성이 밀려왔다.
(당시 2003년의 씁쓸했던 기억은 세월이 흘러 2026년 현재 놀라운 격세지감을 선사한다. K-팝과 K-드라마를 필두로 한 한류 문화가 전 세계를 매료시켰고, 뉴욕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 역시 한국실을 독립시키고 현대 한국 미술과 역사를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최첨단 전시 공간으로 거듭났다. 당시 가슴을 치며 아쉬워했던 사진가 아빠의 안타까운 시선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의 중심에 선 우리 문화의 위상이 더욱 감격스럽게 다가온다.)
문화적 아쉬움과 세계적인 전시 규모에 대한 감탄이 기묘하게 교차하던 자연사 박물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박물관 문을 나서며, 다음 목적지인 예술의 성지 구겐하임과 사진가로서의 본향 국제사진센터(ICP)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