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55. 무질서 속의 활기,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친절한 영혼들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2024년 6월 30일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 붉은 신호등과 뉴욕 특유의 무질서 속 질서

열흘간의 대륙 횡단 피로가 한 번에 밀려왔는지 다소 긴장이 풀려 오늘도 조금 늦게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침대에 파묻혀 조금만 더 자고 싶었지만, 오늘부터 시작될 뉴욕 도심 일정을 위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호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니 이른 아침부터 맨해튼 중심가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대도시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져 꼭 고향 서울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뉴요커들의 독특한 교통 문화였다. 신호등을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 오지 않으면 붉은 불이어도 무단횡단을 내짓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울에서는 최소한 신호만큼은 엄격히 지키는데 이곳은 정말 사뭇 달랐다.


재미있게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건너다니는데도 사고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이른바 '무질서 속의 질서'였다. 차가 오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절대 빨간 불에 건너지 못하도록 엄격히 단속했더니, 다들 건너는데 왜 우리만 서 있냐며 아이들의 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뉴요커들의 그 거침없는 걸음걸이는 어쩌면 실용성과 편리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 좁고 어두운 역사, 그러나 깨끗했던 지하철 객차

첫 목적지인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터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좁고 어둡고 침침하여 쾌적한 서울 지하철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복잡한 지하철 이용법 때문에 한참을 헤매고 있던 중, 지하도를 순찰하던 경찰관이 다가와 일일 패스(1-Day Unlimited MetroCard)를 끊으면 버스와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편리하다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당시 $7불이던 1일 무제한 패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사를 거쳤다. 2026년 현재 뉴욕 지하철은 종이 카드인 메트로카드 대신 스마트폰이나 비접촉식 신용카드를 찍고 타는 '옴니(OMNY)'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7일 동안 일정 횟수 이상 승차하면 자동으로 무제한 혜택이 적용되는 스마트한 요금 체계로 진화한 셈이다.)


패스를 끊고 나서도 어느 승강장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는데, 인상 좋은 흑인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우리가 제대로 열차에 올라탈 때까지 끝까지 확인하며 방향을 일러주셨다. 각박한 대도시에서 마주한 뜻밖의 다정함에 가슴 한구석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하철 객차는 서울 전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이 비좁았다. 유명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드슨(Bruce Davidson)의 음습하고 위험천만한 뉴욕 지하철 사진집을 보며 지레 겁을 먹었던 것과 달리, 노후된 통로 곳곳의 낙서를 제외하면 실내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했고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왔다.


🤝 인종을 초월한 온기와 뉴욕의 참모습

열차 안에서 어디서 내려야 할지 지도를 보며 고뇌하고 있을 때, 아내 옆에 앉아 있던 교포 2세로 보이는 상냥한 젊은 여성이 서투른 한국말로 먼저 다가와 도울 일이 있느냐며 내릴 곳을 친절히 안내해 주고 내렸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들고 서성이자, 길거리에서 조그만 잡화점을 운영하시던 한인 아주머니께서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손을 꼭 잡고 알짜배기 뉴욕 관광 정보와 길을 상세히 일러주셨다.


타국 땅에서 스치듯 만난 동포의 다정한 미소는 여행자의 지친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오기 전 막연하게 품었던 '삭막하고 위험한 뉴욕'에 대한 편견이 눈 녹듯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고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 지나갔지만,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우연히 만난 모든 이들이 따뜻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뉴욕이라는 위대한 도시가 숨겨둔 진짜 매력과 온기를 피부로 느끼며, 우리 가족의 뉴욕 첫 도보 여정은 절로 흥겨운 발걸음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