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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다리 위의 경찰, 한인타운의 갈비 파티와 화장실 순번표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2024년 6월 19일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다리 위의 경찰과 9·11 테러의 그림자

맨해튼으로 진입하는 교량을 건널 때 또다시 통행료 징수대를 만났다. 당황스럽게도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4달러(2003년 당시 가격)의 톨비를 거두어가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묵직한 권총을 차고 있는 경찰들이었다.


다리를 건너는 데 돈을 받는 것도 씁쓸했지만, 요금소 징수원이 경찰이라는 사실은 사뭇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아마도 불과 2년 전 터진 9·11 테러의 깊은 상흔 때문에 교량과 주요 진입로의 경비가 한층 강화되면서 경찰들이 직접 현장에 배치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당시 $4불이던 맨해튼 진입 주요 교량/터널 통행료는 2026년 현재 현금 부스가 전면 철거되고 무인 번호판 인식(EZPass / Pay by Plate)으로 전환되었으며, 요금 역시 $16~$19불 안팎으로 크게 올랐다. 당시 요금 부스에 서 있던 경찰들의 엄숙한 표정은 그 시절 뉴욕이 견뎌내던 아픈 안보의 단면이었다.)


🥩 서울 강남을 닮은 32가, 예지의 갈비 파티

호텔 방에 짐을 안전하게 풀자마자, 그동안 굶주렸던 고국의 맛을 느끼기 위해 호텔 밖 한인타운 거리로 나섰다.

거리의 풍경은 그야말로 서울의 한 모퉁이를 통째로 잘라다 옮겨 놓은 듯했다. 수개월 전 지나친 LA 한인타운이 소박한 옛 동네 느낌이었다면, 맨해튼 32가는 세련되고 번화한 '서울 강남'의 한복판 같았다. 스쳐 지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고, 사방에서 정겨운 한국말과 한글 간판이 번쩍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리를 채운 사람들의 연령대였다. 지나다니는 행인은 물론 식당과 마트의 카운터, 서빙을 맡은 직원들까지 모조리 활기 넘치는 유학생과 교민 청년들이었다.


옆에서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딸 예지가 "워싱턴주 가게들은 다 아줌마, 아저씨들만 일하시는데, 뉴욕은 일하는 사람들이 다 언니 오빠들처럼 젊다!"며 눈을 반짝였다. 치열한 타국 한복판에서 생동감 넘치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 더없이 대견하고 보기 좋았다.


🚽 초라한 시골 손님들과 화장실 소동

열흘 동안 태평양 연안부터 미 대륙 전체를 차로 가로지르며 고생을 한 탓인지, 정작 우리 가족의 행색은 뉴욕 한복판에서 가장 초라한 '시골 사람' 같았다.


하지만 도시의 활기 속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며칠 전부터 뉴욕에 가면 꼭 맛있는 갈비를 사달라고 노랠 부르던 예지를 위해 호텔 바로 앞 북적이는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오가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식당 안은 고국 서울의 유명 맛집과 다름없었다. 이틀 연속 라면으로 때우던 미안함도 씻어낼 겸, 다소 비싼 가격이었지만 정갈한 숯불 갈비를 차려놓고 온 가족이 오랜만에 푸짐한 포식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밤 거리 역시 치안 걱정을 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수많은 인파로 안전하고 활기찼다. 쓸데없는 예단으로 너무 앞서 걱정했구나 싶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러나 포식의 기쁨도 잠시,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웃지 못할 소동이 벌어졌다! 열흘 만에 갑자기 기름지고 푸짐한 육류를 폭식한 탓인지, 온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 듯 번호표를 뽑아가며 화장실 문턱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화제를 챙겨 먹고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가족들의 얼굴엔 기분 좋은 배부름과 웃음이 가득했다.


차를 타고 오래 지체하다간 경비가 거덜 날 것 같아, 뉴욕 일정은 3박 4일 동안 지하철과 발품으로만 알차게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짧은 시간 동안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의 모든 프레임을 가슴에 담으리라 다짐하며, 횡단 열흘째 밤의 행복한 침대 속으로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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