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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10년 여름: 미국 역사의 첫 단추, 플리머스의 순진했던 오해와 마사소이트 추장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4년 6월 12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 400년 전의 배를 찾아서: 플리머스(Plymouth)로 가는 길

보스턴에 오기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작된 역사적인 성지, 플리머스(Plymouth)였다.  


보스턴 다운타운에서 남쪽 해안가를 따라 차로 30~40분 정도 내려가면 다다르는 이 소도시 전체는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초행길임에도 관광지 특유의 활기와 수많은 인파, 차량들로 북적여 설렘이 커졌다. 약간 늦은 오후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해안가의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메이플라워 II호'의 유쾌한 배신감과 순진했던 오해

배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 다소 짭짤한 입장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매표소 입구 표지판에 'Mayflower I'이 아닌 'Mayflower II'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좁고 비좁은 배 안을 둘러보며 "이 자그마한 배에 102명이나 되는 청교도들이 어떻게 수개월 동안 비대면 감금 상태로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왔을까" 신기해하다가, 배 한쪽에 붙어있는 '1950년대'라는 연도 표기를 발견하고 말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당시 17세기 복장을 한 현장 재연 직원에게 '메이플라워 II'의 의미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대단히 무심하고도 솔직했다.  "진짜 메이플라워호는 400년 전 이듬해 영국으로 돌아갔고요. 이 배는 1950년대에 당시 배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여 새로 만든 복제품(Replica)입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400년 전 목선이 파도와 세월을 버티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순진함과 바보 같음에 절로 실소가 터졌다. 비싼 입장료에 약간의 속았다는 배신감이 밀려와 헛웃음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1600년대의 험난했던 대서양 횡단을 재현해낸 그들의 복원 기술과 상업적 스토리텔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1620' 각인 바위와 위풍당당한 마사소이트 추장

씁쓸한 웃음을 뒤로하고 청교도들이 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역사적 기념물 '플리머스 바위(Plymouth Rock)'로 향했다. 그리스 신전 양식의 신기한 건축물 아래 보존되어 있는 바위 위에는 선명하게 '1620'이라는 연도가 음각되어 있었다.  


한번 '메이플라워 II호'에 데이고 나니 "그냥 아무 바위에나 숫자를 깎아 넣은 것 아닌가" 하는 유쾌한 의심이 꼬리를 물었지만, 역사의 낭만을 위해 기꺼이 믿어주기로 했다.  


늦은 시각이라 박물관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여서, 플리머스 항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실물보다 훨씬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인디언 추장의 동상이 바다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 지역의 이름을 낳은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 '마사소이트(Massasoit)'의 동상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매사추세츠(Massachusetts)라는 주명(State Name) 역시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할 당시 낯선 이방인들을 포용했던 이 위대한 추장 마사소이트의 이름과 그의 부족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강인하고 다부진 인상의 동상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넉넉한 인심으로 맞아주었던 낯선 땅이 40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거대한 현대 국가로 변한 모습을 본다면 과연 추장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묵직한 회고를 가슴에 품은 채, 보스턴과 플리머스에서의 특별했던 여행 일정을 감동적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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