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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10년 여름: 붉은 선 따라 걷는 역사, 그리고 보스턴 다운타운의 울림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3년 2월 17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2일



🏛️ 가이드가 된 예지, 그리고 퀸시 마켓의 활기

답답하고 후텁지근했던 거번먼트 센터(Government Center) 역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탁 트인 넓은 광장이 시원하게 가슴을 뚫어주었다.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이자 중심인 보스턴 시청 청사가 우뚝 서 있는 광장 주변은 활기찬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매번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던 어린 딸아이가 어느덧 보스턴에 수년 살았다고 당당하게 가이드를 자처하며 앞장서 걸었다. 앞장선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감회가 참으로 새롭고 대견했다.  


예지를 따라 시청 뒤편 계단을 내려가자 보스턴의 명물 퀸시 마켓(Quincy Market - 노트의 퀸스 마켓) 앞 광장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미국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유명 맥주 브랜드로도 잘 알려진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 동상이었다.  


동상 주위에서는 버스킹 청년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고, 리모델링을 거쳐 정돈된 마켓 내부와 주변 상가에는 다양한 맛집과 기념품점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며 활기로 넘쳐났다. 








🔴 길 위에 그어진 역사,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보스턴 거리를 걷다 보면 바닥에 연신 선명하게 그어진 붉은 선(보도블록)을 보게 된다. 바로 미국 독립운동의 사적지들을 이어주는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이다.  

미국 최초의 시민공원인 보스턴 커먼(Boston Common)에서 시작되는 이 2.5마일(약 4km) 코스는 붉은 선만 따라 걸으면 독립투사들이 잠든 그래너리 묘지(Granary Burying Ground), 황금 돔의 주의회 의사당,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구 주의사당(Old State House) 등 16개 핵심 역사 유적지를 3~4시간 만에 정복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안내해 준다.  


🦆 수륙양용 덕 투어(Duck Tour)와 찰스강

걸어서 둘러보기엔 시간이 다소 빠듯해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덕 투어(Duck Tour)' 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용 수륙양용차를 개조한 이 버스는 도로를 달리다 보스턴 중심을 흐르는 찰스강(Charles River)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약 1시간 30분 동안 기사님의 재치 있는 입담과 과장을 들으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였지만, 차분하게 프레임을 포착하길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산만하고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1인당 $27불(당시 가격)이라는 꽤 비싼 요금을 치르고 얻은 경험이었지만, 보스턴처럼 아기자기한 도시는 작정하고 하루 동안 천천히 걸으며 카메라에 담는 것이 훨씬 깊이 있는 경험이 되리라 확신했다.  


(당시 $27불이던 보스턴 덕 투어 요금은 2026년 현재 성인 기준 약 $50~$55불 수준으로 올랐다. 매력적인 수륙양용 경험이지만, 사진가에게는 여전히 프리덤 트레일을 발로 걷는 도보 여행이 최고의 선택이다.)


🕯️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유리 탑 아래의 증기

일정의 마지막으로 거번먼트 센터 아래쪽에 위치한 독특한 유리 조형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투명 유리 탑 표면에는 까마득하게 많은 숫자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탑 아래 바닥에서는 뜨거운 수증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솟구치는 증기에 무심코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 안내판을 읽어보고는 이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숫자들은 나치 히틀러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의 수인번호였고, 바닥의 뜨거운 증기는 당시 가스실로 끌려가던 비극적인 희생자들의 숨결과 공포를 조금이라도 피부로 체감해 보라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바로 '뉴잉글랜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New England Holocaust Memorial)'이었다.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마주한 역사적 비극과 인류애에 대한 경종에 깊은 소름과 치떨림이 밀려왔다.  


보스턴이라는 위대한 도시의 진면목을 단 며칠 만에 모두 품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몇 달쯤 이곳에 머물며 구석구석 카메라 렌즈에 담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았지만, 삶의 여건상 스치듯 대충 둘러본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만족과 울림을 안겨준 소중한 보스턴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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