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째 날 밤, 몬태나의 교훈
- Sangwon Jung
- 2019년 4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울며 겨자 먹기의 호강, 그리고 미졸라에서의 피 말리는 밤
워싱턴주 제2의 도시인 스포켄 근처에 이르러, 붉은 주유등이 켜지기 전에 서둘러 주유소로 차를 들이밀었다. 미국의 주유소는 대부분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는 셀프 시스템이다. 당시 내가 알기로는 미국 전역에서 우리나라처럼 직원이 서비스를 해주는 주가 딱 두 곳, 바로 오레곤(Oregon)과 뉴저지(New Jersey)뿐이었다. 특히 워싱턴주 바로 아래의 오레곤주는 고용 창출을 명목으로 주법에 주유 직원을 의무 채용하도록 규정해 두어 참 이색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23년 말, 오레곤주마저도 약 70년 만에 주법을 개정해 운전자가 직접 셀프 주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제 미국 전역에서 순수하게 직원이 주유를 전담하는 곳은 뉴저지주 단 한 곳만 남게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가 참 무상하다.)
미국의 기름값은 주유소 브랜드마다, 혹은 같은 브랜드라도 주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깐깐하고 경제적인 미국인들은 조금 멀더라도 가격이 저렴하거나 자신이 선호하는 주유소를 일부러 찾아가곤 한다. 우리 역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늘 가장 저렴한 일반 레귤러(Regular) 휘발유를 넣어왔다. 오늘도 별 생각 없이 주유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는데, 웬걸, 일반 기름이 다 떨어져서 가장 비싼 '슈퍼 프리미엄(Super Premium)'만 주유가 가능하다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자세히 보니 주유기에 조그만 글씨로 고장(Out of Order)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동네 같았으면 당장 차를 돌려 나갔겠지만, 낯선 길 위에서 다음 출구(Exit)를 찾아 헤매는 번거로움이 싫어 눈 딱 감고 비싼 기름을 채워 넣었다. ‘먼 길 가는데 우리 차 영양가 높은 기름으로 호강 한 번 시켜주지 뭐.’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한 영수증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미국의 서부 고속도로는 한국과 달리 휘황찬란한 종합 휴게소가 없다. 밥을 먹거나 주유를 하려면 무조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인근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출구 바로 앞에 마을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마을 깊숙이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곤란한 상황도 생긴다. 대신 고속도로 중간중간에 화장실과 간단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쉼터인 '레스트 에어리어(Rest Area)'가 피로를 달래줄 뿐이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몬태나주까지 가는 '논스톱' 여정이었기에 온종일 차 안에 갇힌 아이들의 지루함은 극에 달했다. 딸 예지는 차만 타면 기절하듯 잠에 취했고, 아들 도희는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닌텐도 게임보이 화면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집을 나선 지 6시간 30분 만에 마침내 워싱턴주 경계를 넘어 아이다호(Idaho)주로 들어섰다. 아이다호는 불과 1시간 50분이면 통과하는 짧은 구간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주이기도 했다. 이전 여행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아이다호의 아시안을 바라보는 공기는 유독 차갑고 냉랭했다. 서부 해안가의 다정한 미국인들과 달리, 눈이 마주쳐도 굳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그 서늘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차 안의 공기마저 덩달아 무거워졌다.
우리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으나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들른 작은 식료품점(Grocery)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아이다호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번개처럼 통과해 버렸다.
⛰️ 몬태나의 품으로, 그리고 편견을 깨뜨린 미졸라의 밤
오후 6시 45분경, 드디어 몬태나(Montana)주 경계선이 우리를 반겼다. '산(Mountain)'이라는 주 이름의 유래답게,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산봉우리들이 도로 양옆을 호위하듯 감싸 안았다. 고지대 특유의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마치 우리 머리 바로 위에 맞닿은 듯 신비로웠고, 창밖으로 스치는 농가와 평원의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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