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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세찬 바람 속 사발면, 그리고 빼앗긴 한 시간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0년 12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반신반의했던 배드랜드와 바람 속의 사발면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로 차를 몰아넣으면서도 사실 마음 한구석엔 반신반의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마운트 러시모어나 크레이지 호스처럼 요란한 홍보 안내판이 길거리에 도배되어 있지도 않았고, 어제 묵었던 모텔 오피스조차 배드랜드 국립공원에 관한 안내 책자 하나 비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이정표조차 드물어 "혹시 길을 잘못 들어섰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공원 입구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퇴적층의 요철이 만든 웅장함에 "오길 잘했다" 싶었지만, 막상 코스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니 생각보다 싱거운 풍경에 "이 정도로 국립공원 칭호를 붙이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야박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수백만 년의 침식 작용이 만든 기형 암석 지대와 광활한 대초원이 무심하게 얽혀있을 뿐이었다.  공원 중간의 피크닉 에어리어에 차를 대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이 없어 코펠과 버너를 꺼내 사발면을 끓이는데, 세차게 불어대는 배드랜드의 강풍 때문에 불꽃이 날려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황량한 대자연 한복판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며 후후 불어 먹는 뜨끈한 라면 한 그릇의 맛이란!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성찬이었다.  


🧭 시속 65마일의 일직선 도로와 빼앗긴 한 시간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미네소타 방향을 향해 I-90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동부로 향할수록 길은 완전한 일직선이고 사방이 평야 지대"라던 말이 운전대를 잡자마자 몸으로 체감되었다. 핸들을 좌우로 돌릴 필요조차 없이 수평선을 향해 까마득하게 뻗은 일자 도로. 몬태나의 대평원보다도 더 지평선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광활한 대지 위를 몇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내달렸다.  


한없이 달린 끝에 오늘 밤의 최종 머물 자리인 사우스다코타 미첼(Mitchell)에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모텔 오피스에서 시계를 확인하는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륙을 동쪽으로 횡단하며 마운틴 타임(Mountain Time Zone) 구역에서 센트럴 타임(Central Time Zone) 구역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시계 바늘이 시치미를 떼고 한 시간 앞으로 훌쩍 뛰어넘어 있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지친 길 위에서 안 그래도 귀한 한 시간을 공짜로 빼앗긴 듯해 괜히 억울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 미국에서 유일하게 배달되던 피자의 추억

시간도 이미 늦었고 피곤함도 극에 달해 저녁은 도미노 피자를 시켜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미국은 인건비가 워낙 비싸 재료비보다 사람의 노동력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매기는 나라다. 때문에 모든 것을 시급과 시간 단위로 계산하다 보니, 웬만한 일은 소비자가 직접 발로 뛰어 처리하는 DIY(Do it Yourself)와 셀프서비스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음식을 배달시키려면 팁과 배달 수수료가 어마어마하게 붙는 것이 당연했다.  그 철저한 셀프 천국 미국에서 유일하게 어디서나 군말 없이 무료로 배달해 주던 음식이 바로 '피자'였다. 치열한 프랜차이즈 경쟁 덕분에 여행자들에겐 그저 고마운 밤참이었던 셈이다.  (당시엔 무료 피자 배달이 미국의 신기한 풍경이었지만, 오늘날 2026년의 미국은 도어대시(DoorDash)나 우버이츠(Uber Eats) 같은 스마트폰 배달 앱이 보편화되어 한국만큼이나 사방에서 배달 기사들이 달리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팁과 배달 수수료 때문에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 속이 터지는 현실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다운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따스한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며 빼앗긴 한 시간의 헛헛함을 달랜다. 모텔 창밖으로 사우스다코타 미첼의 한적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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