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어, 반전의 땅으로
- Sangwon Jung
- 2019년 4월 20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1시, 마침내 집을 나섰다."
오랜 시간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꼼꼼하게 준비해 온 여정이었지만, 막상 짐을 꾸리다 보니 늘 부족한 것만 보였다. 이것저것 마지막까지 손을 보느라 계획보다 조금 늦게 시애틀 집을 나섰다. 출발할 때의 날씨는 조금 흐렸고 기온은 화씨 59도(섭씨 15도 내외)로 다소 선선했다.
내가 살고 있던 워싱턴주 시애틀과 타코마 지역은 원래 한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고 아주 쾌적한 것이 특징이었다.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한 에어컨 같은 날씨. 하지만 23년이 지난 지금은 이상기후로 인해 이 공식도 많이 변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철 습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날도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2003년 그해의 선선했던 시애틀 여름 공기는 참 귀하고 그리운 선물이었다.
익숙한 고속도로 I-5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퓨얼랍(Puyallup)에서 167번 도로로 빠져나왔다. 다시 아번(Auburn) 지역을 지나 18번 동쪽 방향을 타고 마침내 이번 대장정의 뼈대가 되어줄 '주간 고속도로 I-90'에 합류했다.
거대한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는 관문인 스노퀄미(Snoqualmie) 지역에 접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쏟아지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워낙 날씨 변화가 심해 늦봄까지도 눈발이 날리는 험준한 곳이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웅장하고 수려한 산세는 보는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겨울이면 흰 눈으로 뒤덮여 스키어들로 북적이고, 서북미에서 가장 높다는 스노퀄미 폭포가 위용을 자랑하는 곳. 그 신비로운 산맥의 오르막길을 우리 가족을 태운 자동차가 힘차게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다.
그런데 산맥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순간,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먹구름이 걷히며 하늘이 맑아졌고 기온은 순식간에 섭씨 21도까지 치솟았다.
야키마(Yakima)에 들어서자 주변은 이미 완연한 사막 지형으로 변해 있었다. I-90 도로는 전에도 몇 번 지나다녔지만, 환한 낮에 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분위기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마치 아리조나나 유타주의 거친 황무지를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불과 몇 시간 전 떠나온 서쪽 워싱턴의 푸르른 풍경과는 사뭇 다른 거친 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엘렌스버그(Ellensburg)를 지나 조지(George)라는 작은 마을 사이까지 삭막한 사막이 이어지더니, 그 이후부터는 워싱턴주 제2의 도시인 스포켄(Spokane)에 닿기 전까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완만한 초원 지대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스포켄에 가까워지자 다시 숲과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울창했던 서쪽 지역에 비하면 참 감질나는 풍경이었다.
💡 사진가의 메모: 워싱턴주의 두 얼굴과 출사지
많은 이들이 '워싱턴주 시애틀' 하면 매일 비가 내리고 울창한 침엽수림이 우거진 감성적인 풍경만 떠올린다. (가끔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와 헷갈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촉촉하고 푸른 모습은 워싱턴주의 '서쪽 지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워싱턴주는 거대한 캐스케이드 산맥을 척추 삼아 동과 서가 확연히 다른 풍경과 기후를 보여준다. 산맥 동쪽은 나무도, 높은 산도 없는 완만한 구릉지가 대부분이다. 사계절이 뚜렷해 겨울엔 춥고 눈이 많이 오며, 여름엔 아주 덥고 습한 기후 조건 덕분에 대규모 밀밭 농사와 과수농사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 동쪽 구릉지 한복판에, 전 세계 사진가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출사지'로 손꼽는 스텝토 부떼(Steptoe Butte) 주립공원이 숨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밀밭 구릉지 한가운데에 외롭게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인데, 그 정상에 올라 360도로 끝없이 일렁이는 대지를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압도적인 장관이다. 최근에는 SNS와 디지털카메라의 발전으로 전 세계에서 더 많은 사진가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었지만, 광활한 대지가 주는 감동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에 뒤지지 않는 팔로스 폭포(Palouse Falls) 주립공원도 지척에 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쩍 갈라진 협곡 사이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위용은 대자연의 경외감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팔로스 폭포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워싱턴주의 대표적인 공식 주립 폭포로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 가족이 여행의 큰 줄기로 잡은 I-90 도로를 타고 워싱턴주를 빠져나가기 직전, 조금만 핸들을 돌리면 닿을 수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곳들이다. 거친 벌판 속에 숨겨진 자연의 예술품을 마주할 기대감에, 악셀을 밟는 발끝에 기분 좋은 설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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