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카메라를 거부한 영혼, 그리고 황량한 대지 '배드랜드'
- Sangwon Jung
- 2020년 12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영혼을 뺏는 '검은 상자'와 시팅 불 추장의 포스터
조각상을 바라본 후 기념관 내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디언들의 오래된 장신구와 역사적 사료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북미 인디언 영웅들의 귀한 흑백 사진들이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크레이지 호스 장군의 사진만큼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생전에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백인들이 들고 다니는 카메라라는 '검은 상자'가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간다고 강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후대의 조각가와 라코타 족 사람들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인상 착의를 종합해 현재의 거대한 암벽 흉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실제 크레이지 호스는 작고 왜소하며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다지만, 완성되어 가는 암벽 위의 얼굴은 기개 넘치는 거대한 영웅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다가왔다. 렌즈 뒤에 서는 사진가로서 대지의 영혼을 지키려 했던 전사의 고집에 깊은 경외감이 밀려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수우 족의 또 다른 전설적인 리더, 시팅 불(Sitting Bull) 추장의 초상화 포스터를 한 장 사서 품에 안았다. 인디언의 성지라면서도 정작 그들의 문화와 슬픈 역사를 온전히 되새길 공간이 부족해 서운했던 차에,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 방문은 가슴 깊이 보람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돌아가면 인디언의 역사와 삶을 꼭 깊이 공부해보리라 다짐하며 박물관을 나섰다.
🦬 씁쓸했던 커스터 주립공원과 사우스다코타의 상술
크레이지 호스를 나와 배드랜드로 향하는 길, 조금 돌아서 가더라도 '커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쪽 풍경을 스쳐 지나가 보기로 했다. 미국 대부분의 주립공원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거나 저렴한 편인데, 이곳은 주립공원임에도 차량당 $12불이라는 꽤 비싼 진입로 요금을 요구했다. (당시 $12불이던 커스터 주립공원 입장료는 2026년 현재 차량당 $20불(7일 유효) 수준으로 올랐다. 물론 주립공원 특성상 연간 국립공원 패스는 적용되지 않는다.)
"무언가 대단한 장관이 숨어있겠지" 하고 기대를 갖고 들어섰으나 실망감만 가득했다. 도로변에 드문드문 보이는 들소(버팔로) 몇 마리를 제외하면 한국의 평범한 산길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사우스다코타라는 지역이 유독 관광객을 상대로 지나치게 상업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점을 다시금 씁쓸하게 절감했다.
주립공원을 빠르게 빠져나와 래피드 시티를 거쳐 마침내 목적지인 '배드랜드 국립공원(Badlands National Park)' 방향으로 기수를 틀었다. 🌵 데스밸리를 닮은 또 하나의 세계, 배드랜드 진입 래피드 시티를 뒤로하자, 조금 전의 들뜬 유원지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끝없는 평야 지대와 광활한 목초지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시속 65마일로 그 아득한 일직선 도로를 1시간가량 내달렸을까. 초원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황량하고 기묘한 퇴적암 지대가 사방을 가로막아 섰다. 마치 칼리포르니아의 데스밸리(Death Valley)에 다시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지형이 닮아있었다.
아침의 서늘함은 온데간데없고 기온은 섭씨 25도를 넘어서며 기분 좋게 따스해졌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먹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 광활하게 펼쳐지니, 사진가로서 삼각대를 펼치고 셔터를 누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없었다. 대자연이 만든 기묘한 조각품, 배드랜드의 거친 품속으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깊숙이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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