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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거인의 얼굴에 맞선 인디언의 영혼, 크레이지 호스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0년 12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홍보 책자가 이끈 뜻밖의 발걸음

여정 나흘을 넘어서자 이제는 특별히 깨우지 않아도 온 식구가 제 시간에 맞춰 눈을 떴다. 아침마다 늘 한결같이 일찍 일어나 가족들의 차비와 모든 걸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 덕분에 매번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상쾌하고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모텔을 나설 때만 해도 당초 계획대로 '배드랜드 국립공원(Badlands National Park)'으로 곧장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집어 든 지역 홍보 책자를 살피던 중, 인디언들의 전설적인 영웅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기념관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미 제7기병대의 존 커스터(John Custer) 중령 부대를 전멸시키고 부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북미 인디언 수우 족의 신화적 인물.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사진가로서 이곳만큼은 꼭 직접 눈에 담아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이 생겼다. 우리는 모텔을 출발해 어제 달렸던 래피드 시티의 산길로 다시 핸들을 돌렸다.


🪶 블랙 힐스의 눈물과 아이러니한 도시 이름 '커스터'

래피드 시티에서 커스터(Custer) 시로 이어지는 한 시간가량의 길은 오늘날 화려한 관광지로 탈바꿈해 있었지만, 본래 이곳은 인디언들이 목숨처럼 신성시하던 '블랙 힐스(Black Hills)'의 핵심부다.


수우 족 인디언들은 조상의 영혼이 깃든 이 땅을 무단 점거한 백인 정부를 상대로 1929년 연방법원에 성지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소유권을 둘러싼 이 슬픈 갈등은 백 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인디언들의 희생을 빼놓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음을 길 위에서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한다.


문득 길목에서 마주친 도시 이름이 '커스터(Custer)'라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수우 족에게 전멸당한 백인 영웅 존 커스터의 이름을 딴 도시 바로 곁에, 그를 전멸시킨 인디언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기념관이 서 있다니… 역사의 묘한 아이러니와 승자와 패자의 잔상이 교차하는 오묘한 분위기였다.


🗿 러시모어 4대 대통령을 합친 것보다 거대한 기적

약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Crazy Horse Memorial)'은 아침 일찍이라 고요하고 한적했다. 이곳은 국가(국립공원)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인디언 재단과 뜻있는 민간 단체의 후원금으로만 제작되는 독립 기념관이다. 그렇다 보니 입장료가 다소 비싼 편이다.


(당시에는 차량당 $28불, 혹은 성인 1인당 $11불 수준이었으며, 2026년 현재는 차량 1대당 $35불(2인 이상 승차 기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간 국립공원 패스는 적용되지 않지만, 인디언 역사와 독립 예술가들의 유산을 지키는 순수한 기부금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결코 아깝지 않은 금액이다.)


기념관 관람석에 들어서서 저 멀리 깎아지른 바위산 산봉우리를 바라본 순간, 압도적인 스케일에 숨이 턱 막혔다. 마운트 러시모어에 조각된 네 명의 백인 대통령 얼굴 크기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한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과 기마상이 암벽 전체에 당당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과 다이너마이트만으로 한 땀 한 땀 돌을 깨부수며 조각가를 거쳐 그 자손들까지 몇 대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는 이 무모하고도 거대한 집념. 러시모어의 백인 영웅들에게 "이 땅의 진짜 주인은 우리다"라고 외치는 듯한 인디언의 거대한 영혼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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