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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승자의 기념비와 씁쓸한 역사의 잔상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0년 4월 1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바위산 위의 자부심, 그리고 인디언 성지의 눈물

주차비를 치르고 들어서자, 미국 전역의 주(State) 번호판을 단 수많은 차량이 주차장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미 대륙의 자존심과 우월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비록 거대한 바위산 정상에 저토록 정교한 흉상을 조각해 냈다는 토목과 광학적 열정 자체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곳 '블랙 힐스(Black Hills)'는 북미 인디언들이 목숨보다 신성하게 여기던 원주민들의 거룩한 성지였다. 과거 백인들이 이 땅을 빼앗기 위해 수많은 인디언을 무참히 살육했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원주민의 눈물이 배어있는 성지 한복판에 백인들의 영웅을 새겨놓고 자부심을 고취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한국의 전국 명산마다 쇠말뚝을 박아놓았던 일제의 만행이 겹쳐 떠올랐다. 이곳을 찾아 환호하는 수많은 미국인의 얼굴 뒤로, 빼앗긴 자들의 슬픈 역사가 무겁게 겹쳐 보였다.  


🎡 사우스다코타의 번화한 풍경과 래피드 시티(Rapid City)

마운트 러시모어 주변은 그동안 우리가 지나온 국립공원들의 한적함과는 완전히 다른, 전형적인 유원지이자 들뜬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사우스다코타주 전체가 유독 다른 지역에 비해 고속도로 변의 대형 화려한 광고판이 자극적으로 많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시끌벅적하고 들뜬 분위기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날씨도 협조해 준 덕분에 가고자 했던 코스에서 원하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시간이 어중간해 다음 목적지인 '배드랜드 국립공원(Badlands National Park)' 방문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밤 묵어갈 부근의 거점 도시, 래피드 시티(Rapid City)로 핸들을 돌렸다.  


래피드 시티와 블랙 힐스 일대는 원래 인디언들의 오랜 터전이었으나, 오늘날 이곳에 세워진 수많은 볼거리와 기념비들은 대부분 인디언의 멸망 위에 싹튼 백인들의 짧은 역사와 경제적 부강함을 자랑하는 장소들뿐이었다. 인디언의 역사적 흔적은 승자의 역사 뒤편으로 씁쓸하게 지워져 있는 듯하여 마음이 착잡했다.  


🌈 무지개가 남긴 하루의 정갈한 마침표

전국에서 유명 관광지로 몰려든 수많은 인파 때문인지, 래피드 시티의 모텔 숙박비는 예상보다 훨씬 비쌌다. 씁쓸한 마음과 비싼 숙박비에 투덜거리며 겨우 방을 구하고 모텔 문을 열어 짐을 푸는데, 창밖 반대편 하늘에서 환전한 반전이 일어났다.  


오락가락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더니,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 위로 완벽하고 선명한 무지개가 짠하고 떠오른 것이다!  

씁쓸했던 마음도, 피곤했던 몸의 시름도 순간 말끔히 씻겨 나가는 듯했다. 후다닥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들고 렌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6월의 대폭설부터 인디언의 성지, 그리고 저녁 하늘의 무지개까지… 대자연이 선물해 준 멋진 마침표 덕분에, 다섯째 날의 아날로그 여정도 그렇게 기분 좋고 정갈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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