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3. 붉은 흙길의 신로와 러시모어의 얄팍한 주차권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20년 3월 15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스톱(Stop)과 슬로우(Slow), 그리고 마일에 길들여진 나의 착각

데빌스 타워를 뒤로하고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긴 공사 구간을 만났다. 미국 도로 공사 현장의 세심함은 매번 감탄을 자아낸다. 공사 현장 훨씬 전부터 큼직한 안내판들이 잇따라 경고를 보내고, 현장에 다다르면 'STOP'과 'SLOW' 양면 팻말을 든 신호수가 양방향에서 차량 흐름을 세심하게 통제한다.  


비가 많이 내려 진흙밭이 된 외길 구간에서는 아예 'Follow Me(나를 따르라)' 팻말을 단 선도 차량(Pace car)이 등장해 앞장선다. 반대편 차선 차량들이 10분 넘게 마냥 멈춰 서서 순서를 기다리지만, 그 누구도 빵빵거리거나 조바심 내지 않는다.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한 정당한 기다림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공사 현장이 나타나 운전자를 아찔하게 만들곤 했던 고향의 도로 풍경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진흙탕 신로를 빠져나와 다시 시속 65마일로 속도를 올리는데, 문득 도로 표지판에 마일(Mile)과 킬로미터(km)가 함께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땐 킬로미터 대신 마일을, 킬로그램 대신 파운드를 쓰는 이들의 독자적인 단위 체계 때문에 어지간히 애를 먹었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마일 표시는 직관적으로 들어오고, 오히려 같이 적힌 킬로미터 숫자가 더 어색하게 느껴지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대륙의 길 위에 온전히 적응해 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 강원도 산길을 닮은 시닉 하이웨이(Scenic Highways)

거대한 대통령 얼굴 조각상이 있는 '마운트 러시모어(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를 향해 '시닉 하이웨이(Scenic Highways)'에 접어들었다. '경관 도로'라는 그 화려한 이름값과 달리, 도로 주변은 그저 굽이굽이 아담한 소나무들이 울창한 평범한 산길이었다.


마치 한국의 강원도 미시령이나 한계령 골짜기를 달리는 듯한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옐로우스톤이나 티턴, 데빌스 타워 같은 서부 특유의 압도적이고 거대한 대자연을 연달아 보아온 탓에,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서 유난히 평범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 마운트 러시모어 도착, 그리고 국립공원 청의 얄팍한 상술

빽빽한 나무 사이를 지나 마침내 마운트 러시모어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문 매표소에서 조금 황당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국립 기념지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 대신 '차량 주차료'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차를 대려면 주차비를 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당시에 연간 국립공원 패스(골든 이글 패스)를 당당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차비 명목이라는 이유로 패스 적용을 거부당한 채 차량당 $8불의 생돈을 지불해야 했다. 꼼수 같은 시스템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2026년 현재도 이 상술은 여전하다. 아니, 한술 더 떠서 현재 차량당 주차비는 $10불로 올랐다. 연간 패스를 가진 방문객이라도 주차비는 예외 없이 따로 내야 하는 룰은 지금도 바뀌지 않아, 많은 해외 여행자들의 혀를 차게 만든다. 단, 한번 구매한 주차권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연간 주차권으로 발행해 준다는 점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투덜거리며 차를 대고 걸어나가는 순간, 저 멀리 산꼭대기 암벽 위로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 네 명의 거대한 대통령 얼굴들… 미 대륙의 역사와 거대한 국가적 자부심이 벼랑 끝에 또렷하게 새겨진 그 현장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