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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정크 모텔과 디지털 사진을 날려버린 비극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19년 11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미국 모텔의 두 얼굴: 여행자 모텔 vs 정크 모텔

고속도로 표지판에 적힌 노란 간판을 보고 무작정 셰리든(Sheridan) 마을 입구의 '모텔 6(Motel 6)'로 들어섰다. 지친 몸을 누이며 미국 모텔이라는 공간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미국의 모텔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고속도로 변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여행자 모텔'은 이름(Motor + Hotel) 그대로 자동차 여행객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세탁실, 수영장, 헤어드라이어, 다리미는 물론 무료 아침 식사(토스트, 시리얼, 도넛 등)까지 알차게 제공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든든한 안식처다.


반면 '정크 모텔(Junk Motel)'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주로 다운타운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여행자보다는 영세민이나 신용 불량 상태의 장기 투숙자들이 주로 기거하는 곳이다. 미국은 '크레디트(신용)'가 없으면 아파트조차 얻기 힘든 나라다 보니, 정착 초기의 이민자나 신용이 낮은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환경이 열악하고 치안이 불안해 정찰 경찰들이 자주 드나들곤 한다.


안타깝게도 미국에 처음 건너왔을 때 이런 모텔들의 주인이 대부분 한인 교포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열하고 고된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하루하루 악착같이 살아가는 우리 교민들의 눈물겨운 현장이기도 했다.


🛒 싼 게 비지떡, '모텔 6'의 배신

체인 모텔 중에서도 '모텔 6'는 길가 광고판에 커다랗게 저렴한 가격을 표시해 두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곤 한다. 예전 여행 때만 해도 싸고 깔끔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 선뜻 문을 열고 들어왔건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완벽한 배신이었다.


알고 보니 도로 변에 걸어둔 저렴한 금액은 '성인 1인' 기준의 눈속임용 가격이었다. 우리 가족 4인이 들어가자 다른 모텔과 다름없이 비싼 요금을 요구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가격이 싸다'는 구실로 일반 모텔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헤어드라이어, 냉장고, 전자레인지는커녕 그 흔한 조식 서비스조차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우리 방이 3층인데 무거운 아이스박스와 수많은 카메라 가방을 나를 짐 카트(Cart)조차 비치되어 있지 않아 3층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며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허울뿐인 체인점 책자를 들여다보니 예전의 가성비와 따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 디지털 사진을 날려버린 아찔한 밤

하지만 모텔의 불친절함보다 나를 더 절망으로 밀어 넣은 사건은 따로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멍했던 탓일까.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담겨 있던 오늘 하루의 디지털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만 실수로 데이터를 전부 날려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6월의 폭설을 뚫고 지나온 해발 3,100m의 대설산, 붉게 물들었던 와이오밍의 황금빛 석양과 무지개… 그 피땀 어린 찰나의 순간들이 찰나의 클릭 한 번으로 공중분해 되었을 때의 그 허무함과 자책감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시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혼용해 찍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필름까지 없었다면 내 첫 대륙 횡단기의 소중한 컷들이 완벽하게 증발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복구 소프트웨어도 제대로 없던 2003년의 그 막막했던 밤, 가슴을 치며 후회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게 만든다.)


비싼 짐꾼 노릇을 시킨 모텔 6에 대한 짜증과 사진을 날려버린 자책감이 뒤엉켜, 나흘째 밤은 내 인생 가장 고통스럽고 피곤한 밤으로 기억 속에 묵직하게 남게 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 펼쳐질 사우스다코타의 새로운 길을 위해 쓰라린 가슴을 누르고 겨우 눈을 감는다.


미국의 일반적인 모텔 전경
미국의 일반적인 모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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