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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6월의 폭풍설을 뚫고 황금빛 석양 속으로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2019년 9월 4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 옐로우스톤 호수의 펠리컨 군무와 카우보이의 땅

아쉬운 티턴 공원을 뒤로하고 옐로우스톤 동쪽 입구로 기수를 틀었다.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다른 매표소 도로들보다 확실히 경사도가 높고 험준했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기암괴석의 경관만큼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공원 경계 즈음에서 거대한 바다 같은 '옐로우스톤 호수(Yellowstone Lake)'를 마주했다. 갓길에 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에 우리도 얼른 차를 세웠다. 호수 위에서는 여러마리의 백색 펠리컨 무리가 마치 칼군무를 추듯 일제히 고개를 물에 박았다가 떼 지어 도는 기묘하고도 일치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고기를 낚아채는 그 신비로운 대자연의 중계에 아들 도희는 넋을 잃고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겨우 아이를 달래 공원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조금 전의 침엽수림과는 180도 다른 황량한 아리조나 사막지대 같은 풍경이 들이닥쳤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날씨가 훨씬 선선하고 지평선 너머로 끝없는 말 목장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 서부 영화의 세트장 같은 풍경을 보며, 그제야 와이오밍주 번호판에 왜 야생마를 타는 카우보이가 새겨져 있는지 고개가 깊이 끄덕여졌다.  


공원 밖 첫 동네인 '코디(Cody)'에 들어서자 "오늘 밤 로데오 시합이 열린다"는 홍보 차량의 안내 방송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이 미국 전역에서도 로데오로 손꼽히는 전설적인 카우보이 도시라는데, 일정만 허락한다면 당장 핸들을 꺾어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쉬움을 삼키며 지나쳐야 했다.


❄️ 해발 3,100미터, 민둥산에서 마주한 한여름의 대폭설

평범한 도로를 달리던 중 '러벨(Lovell)'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멀리 보이는 산맥의 절경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빅혼 레크리에이션 에어리어(Bighorn Canyon)' 방향의 지름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의 서막이었다.


초입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 같은 민둥산이었는데, 귀를 찢는 강풍을 뚫고 숨 가쁜 급경사를 한참이나 치고 올라갔다. 와이오밍 전체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일 만큼 아찔한 높이에 다다르자, 대기는 뿌연 황사처럼 탁했지만 눈앞의 파노라마는 실로 장관이었다.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고 '이제 끝났겠지' 싶으면 또다시 무시무시한 오르막길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연이어 산을 타고 올라 마침내 해발 10,200피트(약 3,108m) 정상부에 도달한 순간, 우리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선선하던 기온이 급강하하더니 희끗희끗하던 잔설이 순식간에 폭풍설로 변해 사방을 집어삼킨 것이다.


6월 말 한여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라니! 한 시간 반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고원을 달리며 우리 가족은 마치 다른 행성이나 깊은 겨울 꿈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대륙 스케일의 이상기후인지, 이곳의 흔한 일상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오직 미국 횡단 길 위에서만 허락된 위대한 장관임은 틀림없었다.


산맥의 반대편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눈발은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고, 녹아내린 눈 때문에 도로는 빙판길처럼 아찔하게 미끄러웠다. 잔뜩 긴장한 채 숲길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횡단 시작 3일 만에 우리의 든든한 대동맥인 'I-90 고속도로'와 눈물겨운 재회를 연출할 수 있었다.


🌇 붉은 아스팔트 위의 예술, 그리고 세리든(Sherida의 안식처

산을 다 내려오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서산에 걸린 해가 창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석양빛을 정면으로 받은 와이오밍의 광활한 들판은 대자연이 그린 하나의 거대한 유화 작품이었다. 마침 고속도로의 아스팔트 색마저 붉은 톤이었던 터라, 대지의 붉은 빛과 하늘의 노을이 어우러져 도로 전체가 환상적인 황금빛 터널로 변모했다. 저 멀리 여운처럼 피어오른 옅은 무지개까지…


운전대를 잡고 세차게 달리는 와중이라 카메라를 꺼내 들지 못하고 그 압도적인 풍경을 그저 눈으로만 흘려보내야 하는 사진가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동하면서 완벽한 찰나의 프레임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혹독하고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했다.


멍하니 붉은 황홀경에 취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깔렸고, 어김없이 숙소 걱정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행히 고속도로 이정표들이 몇 마일 전부터 주유소와 모텔 마크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인터넷도 안 터지던 그 시절에는 이 이정표 고유의 로고 마크 마크 마크들이 야간 운전자들의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 화면으로 숙소 평점을 비교하는 편리함은 없었지만, 표지판만 보고 무작정 불빛을 찾아 들어가는 날것의 설렘이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미끄러지듯 들어간 곳은 '셰리든(Sheridan)'이라는 아담한 서부 마을이었다. 원래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베스트웨스턴 모텔을 찾으려 했으나, 첫날의 피로와 시간 낭비를 줄이자는 아내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마을 초입에 보라색 간판을 밝히고 있는 가성비의 대명사 '모텔 6(Motel 6)'로 거침없이 진입했다. 6월의 폭설과 황금빛 노을을 동시에 겪은, 참으로 기적 같고 다채로웠던 하루의 여정이 서부의 고요한 방 한칸 안에서 따뜻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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