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길을 잃어도 좋은 대평원, Big Sky를 마주하다
- Sangwon Jung
- 2019년 4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아침 7시 30분, 그레이트폴스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아침 기온은 영상 15도 내외로 횡단 여행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포근하고 쾌적한 온도였다. 모텔 조식을 기분 좋게 챙겨 먹고 출발했으나, 얼마 못 가 사거리에서 표지판을 놓치는 바람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10마일이나 달린 후에야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닫고 투덜거리며 차를 돌렸다.
이 사소한 헤맴 때문에 아내와 작은 말싸움이 일어났다. 낯선 길 위에서 가끔 부려지는 몹쓸 성질머리 탓이다. 물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이 실시간으로 길을 완벽하게 안내해 주는 2026년 현재라면 상상도 못 할 풍경이다. 하지만 스마트폰도, GPS도 없던 23년 전에는 오직 사방이 종이로 된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온 가족이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했다. 헤매고 다투던 그 시절의 서툰 아날로그 여행이, 돌이켜보면 참 인간미 넘치는 추억이다.
미국의 도로 표지판은 초행자도 지도만 보면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친절하다. 하지만 '옥에 티'처럼 가끔 이런 중요한 교차로에 표시가 뚝 끊겨 여행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다운타운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모텔 앞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바른길을 찾았다. 덕분에 그레이트폴스가 몬태나주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횡단의 대동맥으로 다시 올라섰다.
다운타운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그야말로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대평원'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차 한 대 없는 한적한 도로 위, 몬태나주의 닉네임인 '빅 스카이(Big Sky)'가 왜 붙었는지 온전히 실감이 나는 웅장한 하늘이었다.
🦅 쏜살같은 피카(Pika)와 도로 위의 제비 타운
평화로운 대평원을 달리는 일은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도로를 낮게 가로지르는 제비 떼와 불쑥 튀어나오는 작은 야생동물들 때문에 내내 운전대를 쥔 손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 다람쥐를 쏙 빼닮은 조그만 녀석들은 가만히 서 있다가도 차가 다가가면 쏜살같이 길을 건넜는데, 가끔 납작하게 엎드린 포복 자세로 유유자적 횡단하는 통에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진땀을 뺐다.
식은땀을 흘리는 내게 아들 도희가 조수석에서 한마디 툭 던진다. "아빠, 저 동물 이름 '피카(American Pika)'예요."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낯선 대륙의 야생동물 이름까지 척척 맞히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다. (물론 녀석의 말이 백 퍼센트 맞는지 틀린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
문득 창밖을 보니 우리나라 대도시에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제비들이 셀 수도 없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고속도로 다리 밑마다 마치 거대한 거주 단지를 연상케 하는 수많은 제비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경이로운 '제비 타운'의 풍경은 대륙 동부로 들어설 때까지 내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몬태나는 사람 수보다 사슴과 영양의 수가 더 많다는 소문답게, 초원에 우뚝 서서 지나가는 우리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사슴들을 마주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그만큼 도로 가에 차에 치여 차갑게 굳어 있는 동물들의 사체(로드킬)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어 사진가의 마음 한구석을 짠하게 만들기도 했다.
광활한 대평원을 한참 달리다 보니 군데군데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화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광활한 영토가 기후 변화로 인해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환경 재해의 단면을 목격하자 달리는 마음이 조금은 착잡해졌다.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평평하던 대지가 무너지며 다시 거대한 산과 깊은 계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야가 꽉 막히는 계곡길보다는 앞뒤 좌우가 거침없이 뚫린 대평원을 달릴 때가 사진가에게는 훨씬 마음 편하고 평화로운 법인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가족을 태운 자동차는 서서히 요동치는 대자연의 또 다른 품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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