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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횡단 98] "시애틀엔 매일 비만 오나요?" 길 위의 편견과 브라이스 캐니언의 붉은 첨탑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6일 전
3분 분량
워싱턴주의 자연법과 다람쥐를 달래던 딸, 그리고 브라이스 캐니언 후두(Hoodoo)의 비경

🌲 워싱턴주의 엄격한 환경법, 그리고 다람쥐를 달래는 딸

사실 우리 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워싱턴주(Washington State)만 하더라도 동네 어귀에 다람쥐가 뛰노는 건 흔한 일상이고, 집 앞마당 잔디밭에 야생 사슴이 불쑥 찾아와 한가로이 풀을 뜯을 정도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워싱턴주는 환경 보호에 있어서 지독하리만큼 철저합니다. 주유소 지하에 묻힌 기름 탱크에서 미세한 기름 누출이라도 감지되면, 해당 부지의 토양이 완전히 정화되고 자연 복원될 때까지 영업을 전면 금지할 정도로 환경법이 엄격합니다.   

트레일 길에서 만난 당돌하고 귀여운 사막 다람쥐를 보며 도희는 "아빠, 정말 먹을 것 하나만 주면 안 돼?"라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산책로 곳곳에 걸린 '벌금 100달러' 경고문을 상기시켜 주며 아이를 차분히 달래어 함께 오솔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무거운 전문 카메라 배낭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가파른 트레일 몇 군데를 누비다 보니, 온몸에 땀이 배어 나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해졌습니다.   



🌧️ "시애틀엔 비만 온다면서요?" 길 위에서 마주한 편견과 오해

더 좋은 앵글을 찾아 잠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뷰포인트를 향해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점잖은 한국인 부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영어로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해 왔습니다.   

카메라를 받아 들며 반갑게 "한국분이시죠?" 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자, 머나먼 대륙의 붉은 협곡 한복판에서 동포를 만난 그분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콜로라도에서 여행을 왔다는 그 부부와 나란히 걸으며 정겹게 담소를 나누다가, 우리 가족이 워싱턴주 타코마(Tacoma)에서 출발해 횡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눈을 크게 뜨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 거기는 일 년 내내 비만 매일 온다면서요?"   

그 질문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겨울철 우기에는 비가 잦은 편이지만, 여름철 워싱턴주는 미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부시고 맑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타코마에서 살다가 콜로라도로 이사 온 지인의 단편적인 푸념만 전해 듣고, 워싱턴주 전체가 365일 음침하게 비만 쏟아지는 줄로만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겪은 지극히 좁은 경험을 세상의 전부인 양 말하는 이들 때문에 세상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왜곡이 쌓여가는 것일까요! 심지어 미국 안에서도 서북부 워싱턴주(WA)와 동부 수도 워싱턴 D.C.를 분간하지 못해 헷갈려 하고, 한국의 공식 정부 웹사이트조차 "워싱턴 D.C.가 워싱턴주 안에 있다"고 엉터리로 표기해 둘 정도이니 말입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들의 편견과 오해를 따뜻한 대화로 풀어주는 것 또한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참 소소하고도 값진 보람이었습니다.   


🏛️ 개척자 브라이스(Bryce)의 유산과 씁쓸한 햄버거

브라이스 캐니언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이곳에 처음 들어와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농장을 일구었던 스코틀랜드계 이주민 '에베네저 브라이스(Ebenezer Bryce)'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비록 협곡의 전체적인 면적은 아주 거대하지 않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 물과 바람, 얼음의 침식 작용이 빚어낸 붉은 흙기둥 첨탑, 즉 '후두(Hoodoo)'들의 압도적인 밀집도는 북미 대륙의 그 어떤 국립공원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독보적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공원을 빠져나오려는데, 구급 배낭을 둘러멘 공원 레인저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붉은 계곡 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트레일을 걷던 연로한 여행객 한 분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던 모양인데, 천만다행으로 큰 탈 없이 구조되어 수습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공원 입구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차림새는 엉성하면서 가격만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얄팍한 상술은 이곳 국립공원 문턱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퍽퍽한 패티를 씹으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뷰파인더 가득 담아온 붉은 첨탑들의 영롱한 사선 잔상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서 찬란하고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 [미 서남부 여행 정보]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 (Bryce Canyon)

🏛️ 명칭과 개척의 역사유래: 1875년 이 거친 협곡 아래 정착하여 목장을 경영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개척자 에베네저 브라이스(Ebenezer Bryce)의 이름에서 붙여졌습니다.   
개척자의 명언: 사방이 복잡하고 기괴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이 미로 같은 협곡을 두고, 그는 훗날 "소 잃어버리기 딱 좋은 지옥 같은 곳(A hell of a place to lose a cow)"이라는 아주 유쾌하고도 실감 나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 대자연이 빚은 붉은 조각장, 후두(Hoodoo)형성 과정: 수백만 년 동안 내린 빗물과 눈이 바위 틈새로 스며들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동결 쇄설 작용(Frost Wedging)과 빗물의 화학적 침식에 의해 연약한 석회암층이 깎여나가며 완성되었습니다.   
풍경의 압권: 촛대나 성벽처럼 솟아오른 수만 개의 붉은 암석 기둥 첨탑(Hoodoo)들이 거대한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Amphitheater) 형태로 둥글게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어, 일출과 일몰 때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빛의 향연을 선사합니다.   

📚 도서 출간 및 사진투어 안내

  • 📖 포토에세이 『길 위에서 셔터를 누르다』 출간 안내

    • 광활한 미국 대륙의 풍경과 30일간 길 위에서 마주한 가족의 생생한 순간들을 담은 포토에세이가 출간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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