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 97] 은퇴자들의 RV 낭만과 섭씨 29도의 천국,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의 당돌한 다람쥐
카납의 아침을 지나 붉은 첨탑의 숲으로! 과속의 긴장감과 야생 다람쥐가 건넨 유쾌한 미소
🚌 거대한 RV 버스와 대륙을 누비는 미국 노부부들의 낭만
카납(Kanab) 모텔의 아침 식당은 여느 여행지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은퇴 노부부들로 가득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치열하게 일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조국의 광활한 대자연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이 미국인들의 가장 큰 평생의 꿈이라고 합니다. 비록 거동은 다소 불편해 보일지라도, 침대와 주방, 욕실까지 완벽하게 갖춘 거대한 RV(캠핑카) 버스 뒤에 작은 승용차를 매달고 천천히 대륙의 품을 누비는 그들의 여유로운 노년이 무척이나 근사하고 부러워 보였습니다.

어젯밤 시차 소동으로 늦게 잠든 탓에 출발이 다소 늦어졌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아침 하늘은 모처럼 적당한 구름과 투명하고 맑은 빛이 어우러져 사진 찍기에 완벽한 아침 광선을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대신 운전대를 잡고 시간에 쫓기며 아스팔트 위를 달려야 하니, 사진가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애가 탔습니다.
경찰의 과속 단속을 살피며 적당히 눈치껏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한국처럼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깜빡깜빡하며 단속 신호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하며 서둘러 엑셀을 밟았습니다.
🥾 섭씨 29도의 축복,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트레일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지역의 가장 큰 매력은 자이언, 브라이스 캐니언 등 세계적인 국립공원들이 차로 1~2시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점입니다.
카납을 떠난 지 약 2시간 만에 마침내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한창 진행 중인 도로 공사로 조금 어수선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붉은 첨탑들을 보러 모여든 수많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쳐났습니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단순히 차를 타고 전망대만 슬쩍 훑어보기보다는, 벼랑 끝 뷰 포인트들을 이어주는 호젓한 오솔길을 직접 걷는 트레일(Trail) 코스가 무척이나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협곡 아래 깊숙한 밑바닥까지 걸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코스는 상당한 체력을 요하지만, 붉은 기암괴석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길입니다.
고지대 특유의 산뜻한 바람 덕분에 오전 10시 기온은 섭씨 29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섭씨 40도가 훌쩍 넘는 지옥 같은 사막 폭염 속을 달려온 우리 가족에게 섭씨 29도는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고 반가운 날씨였습니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 먹이를 구걸하는 당돌한 다람쥐와 벌금 100달러
공원 산책로 곳곳에는 큼지막한 경고문이 유난히 눈에 띄게 붙어있었습니다.
"야생동물에게 절대 먹이를 주지 마시오. 위반 시 벌금 100달러"
조심스럽게 트레일 길을 걸어가는데, 길가 수풀 사이로 수많은 사막 다람쥐들이 쪼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이 코앞까지 다가가도 전혀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영리한 녀석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두 발로 꼿꼿하게 우뚝 서서, 간절한 눈빛으로 두 앞발을 싹싹 비비며 먹이를 구걸하는 듯한 몸짓을 취하는데 그 당돌하면서도 앙증맞은 애교에 식구들 모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야생의 생명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온전히 평화를 누리는 풍경. 엄격한 자연보호 법규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대자연의 생태계를 정직하게 지켜나가는 미국 국립공원의 보존 노력에 다시 한번 깊은 감탄과 부러움이 동시에 밀려드는 순간이었습니다.





📚 도서 출간 및 사진투어 안내
📖 포토에세이 『길 위에서 셔터를 누르다』 출간 안내
광활한 미국 대륙의 풍경과 30일간 길 위에서 마주한 가족의 생생한 순간들을 담은 포토에세이가 출간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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