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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횡단 94] 신이 빚은 붉은 조각 공원, 모뉴먼트 밸리와 나바호(Navajo)의 깊은 영혼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9월 27일
3분 분량
애리조나와 유타를 잇는 붉은 대지, 서부 영화의 전설이자 인디언 독립 국가의 심장을 달리다

🏜️ 우리 부부의 오아시스, 나바호의 거룩한 붉은 성지

애리조나와 유타의 주 경계를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이곳은 우리 부부가 너무나 사랑하여 서부 여행길을 지날 때마다 기회만 닿으면 어김없이 찾곤 하던, 마음의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처음 이곳 붉은 대지 위에 섰을 때 느꼈던 그 압도적인 감동은 지금도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푸른 풀과 관목을 제외하면 눈앞의 모래도, 발밑의 흙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기암괴석들도 온통 강렬하고 묵직한 붉은빛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마치 대자연이라는 위대한 조각가가 작정하고 빚어놓은 거대한 야외 수직 조각 공원에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국립공원이나 일반적인 관광지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의 손길이 닿는 곳이 아니라, 원주민 나바호 인디언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독자적인 자치 구역이자 거룩한 성지인 '나바호 국가(Navajo Nation)'입니다.

자체적인 언어 방송국과 경찰, 행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사실상 하나의 독립 국가나 다름없는 곳이죠. 거리에서 마주치는 행인도, 패스트푸드점 점원도, 순찰차를 몰고 지나가는 경찰관도 모두 짙은 구릿빛 피부에 당당한 눈빛을 지닌 나바호인들입니다.


🎬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 그리고 유쾌했던 "빨리빨리!"

과거 백인 개척자들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쓸모없는 불모지라 여겨 이곳을 버려두었습니다. 하지만 1938년,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실제 인디언들이 살아 숨 쉬는 이 장엄한 붉은 무대를 발견하면서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거장 존 포드 감독과 불세출의 스타 존 웨인을 탄생시킨 영화 《역마차(Stagecoach)》의 주 무대이자,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을 배출한 '존 포드 포인트(John Ford's Point)'는 지금도 카메라 셔터를 쥐고 있는 사진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합니다.



현지 나바호 투어 가이드들과 얽힌 정겨운 추억도 떠오릅니다.

예전 비포장도로 변 엉성한 막사에서 지나친 호객 행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한국인 여행자들을 꽤나 많이 만났는지 한국 담배 이름이나 "빨리빨리!"라는 정겨운 한국말을 흉내 내며 우리 가족을 호탕하게 웃겨주던 가이드의 유쾌함이 붉은 흙먼지 사이로 번져왔습니다.


비포장 흙길을 달리느라 차체 전체가 벌건 흙먼지로 뒤덮였지만, 일출과 일몰의 빛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타오르는 붉은 사암들은 그야말로 "사진가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완벽한 프레임" 그 자체였습니다.


🛖 땅과 바람을 닮은 삶, 전통 흙집 '호간(Hogan)'

공원 깊숙한 안쪽에는 문명의 편리함을 뒤로한 채 여전히 조상들의 전통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바호 주민들의 실제 터전이 숨 쉬고 있습니다.

약 18만 명에 달하는 북미 최대 부족인 나바호인들은 차가운 돌집을 짓지 않습니다. 대신 대지의 흙과 통나무를 엮어 사막의 혹독한 더위와 밤의 칼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최적화된 그들 고유의 전통 가옥 '호간(Hogan)'을 짓고, 유목민으로서 거친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거대한 백인 문명과 거대 자본주의의 물결 앞에서도 쉬이 휩쓸리거나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붉은 대지 위에서 고유의 규율과 긍지를 지켜나가는 나바호인들.

붉게 물든 석양이 모뉴먼트 밸리의 거암들에 비스듬히 누워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때, 사진가는 대자연이 선사하는 숭고한 위엄과 함께 이 붉은 땅의 진짜 주인들이 간직해 온 깊고 거룩한 영혼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 [미 서남부 여행 정보] 모뉴먼트 밸리 & 나바호 부족

🌵 모뉴먼트 밸리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위치: 애리조나(Arizona)와 유타(Utah)주의 경계선상형성: 수백만 년 동안 모래 암석이 바람과 물의 힘으로 깎이고 씻겨 나가며 형성된 기암괴석과 메사(Mesa), 뷰트(Butte) 지형
영화의 고향: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Stagecoach)》를 비롯해 무수한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무대
입장 정보: 미국 연방 국립공원 연간 패스(Annual Pass)는 사용 불가합니다. 나바호 자치 정부에서 독립 운영하며, 일반 승용차로 돌아보는 17마일 비포장 순환 코스와 나바호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오프로드 투어 구역으로 나뉩니다. (※ 입장료는 2003년 당시 1인당 $3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차량당 약 $20 또는 1인당 $8~$15 선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나바호 인디언 (Navajo Nation)규모 & 자치: 북미 원주민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부족으로, 웨스트버지니아주 크기에 달하는 방대한 자치구(Navajo Nation)를 독자적으로 운영합니다.
주거 문화: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혹서와 혹한)를 이겨내기 위해 흙과 통나무로 지은 전통 주거지 '호간(Hogan)'을 짓고 살아가며, 대지와 바람을 신성시하는 깊은 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도서 출간 및 사진투어 안내

  • 📖 포토에세이 『길 위에서 셔터를 누르다』 출간 안내

    • 광활한 미국 대륙의 풍경과 30일간 길 위에서 마주한 가족의 생생한 순간들을 담은 포토에세이가 출간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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