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2박 3일 사진 여정 ①] 영남대로의 관문, 천년의 성벽에 올라 진남교반을 굽어보다: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스스로 생각해도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다. 강원도 4박 5일 동해안 여정에서 돌아와 짐을 푼 지 겨우 일주일 남짓 지났건만, 몸과 마음이 근질거려 또다시 카메라 가방을 챙겨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경북 문경이다. 귀국 후 늘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꼭 한번 걸어보고 싶었던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인근의 고모산성과 옛 누정들을 두루 둘러보는 2박 3일의 일정을 잡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청송 주왕산과 안동을 거쳐 귀가할 계획이다.
2025년 6월 2일 아침, 차에 시동을 걸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고속도로를 굳이 외울 필요 없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길안내가 끝나는 편리한 세상이다. 일산 집에서 문경까지 2시간 30분 남짓. 당일치기로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건만, 왜 그동안 그리 멀게만 느끼고 미루어 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과 비교하면 우리네 여행 환경은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30여 년 전 지방 출사를 다닐 때만 해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잠자리였다. 여행자를 위한 마땅한 숙소가 없어 인근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 신세를 지거나 당일치기를 고집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도 쾌적하고 안전한 숙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모텔이나 비즈니스호텔에서 미국 여행 때처럼 깔끔한 조식이나 든든한 한식을 무료로 내어주는 곳이 많아진 점도 무척 반갑고 신기한 변화다.
대부분의 숙소 체크인이 늦은 오후에 시작되니, 차를 몰아 첫 번째 촬영지로 낙점한 고모산성(姑母山城)으로 곧장 향했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인 신라 초기(5세기경)에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에 축조된 유서 깊은 석성이다. 산성에 올라서면 경북팔경(문경팔경)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 '진남교반(鎭南橋畔)'의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진남교반'이라는 이름은 처음 접했을 때 꽤 생소했다. 과거 1970년대 문경 경제를 이끌던 탄광의 폐광지를 거쳐 영강(潁江)을 따라 달리다 보면,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아래로 맑은 강물이 굽이치고 그 위로 철교와 도로교 등 여러 개의 교량이 어우러져 자연과 인공이 묘한 조화를 빚어내는 곳이 바로 진남교반이다.
고모산성 주차장은 규모가 아담하지만 평일 오전이라 한산했다. (이곳이 붐빌 때는 인근 진남휴게소 쪽에 차를 대고 숲길 산책로를 통해 산성으로 오르는 길도 연결되어 있다).
차를 대고 호젓한 숲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옛날이야기나 사극 속에서나 봄직한 고즈넉한 성황당(서낭당)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마을의 안녕과 길손의 무사 안녕을 빌던 돌담과 목조 사당. 거대한 노거수의 웅장한 가지와 어우러진 성황당의 자태는 그 자체로 깊은 토속적 신비감을 자아냈다. 한국의 민속신앙에 애정이 깊은 나로서는 성황당 어귀에 우직한 장승 한 쌍이 함께 버티고 서 있었더라면 더없이 완벽했을 텐데 하는 사진가로서의 작은 아쉬움도 스쳤다.
성황당을 지나자 초가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막거리가 나타났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과 보부상들이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기 전 숨을 고르며 꿀떡을 사 먹었다 하여 '꿀떡고개'로 불렸던 곳이다.
주막거리를 벗어나자 저 멀리 웅장하고 단단한 석축 성문인 남문(진남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으로 향하기 전, 왼쪽 벼랑길로 이어지는 '토끼비리(명승)'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비리'는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인 '벼루'에서 온 말이다. 오정산 절벽 암벽을 선반처럼 깎아내어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 험준한 잔도(棧道) 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던 중 길이 막혀 곤경에 처했을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따라가 길을 내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험준한 옛 역사의 숨결을 눈으로 확인하고 성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문을 통과해 성벽 위로 올라섰다. 능선을 따라 길게 뻗어 올라간 성벽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단단히 머금은 채 정갈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가장 높은 정상부 보루에 오르니, 발아래로 시원하게 굽이치는 영강과 진남교반의 다리들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였다. 구름이 낮게 깔려 날씨가 다소 흐린 탓에 풍경의 콘트라스트가 쨍하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청명한 날 푸른 하늘 아래서 마주한다면 기가 막힌 조망을 선사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산성의 규모가 지나치게 거대하거나 험하지 않아 천천히 사색하며 둘러보기에 딱 좋은 규모다. 다만 야간 관광을 위해 성벽을 따라 설치해 둔 조명 시설물들이 사진가의 앵글에는 다소 아쉬운 방해 요소로 걸렸지만, 인적 없는 성곽 위를 홀로 거닐며 셔터를 누르는 고요한 시간은 그 자체로 더없는 힐링이었다.
성벽을 타고 다시 성문으로 내려와 차로 돌아왔다. 천년 산성의 묵직한 기운을 렌즈에 담고, 이제 첫날의 두 번째 목적지이자 바위 위에 단아하게 둥지를 튼 옛 정자, 주암정(舟巖亭)으로 차를 달린다.
💡 고모산성 & 진남교반
명소 정보:
문경 고모산성: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일원. 삼국시대 신라의 축성. 입장료 및 주차료 무료.
문경 토끼비리: 명승 제31호.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했던 암벽 잔도길.
진남교반: 경북팔경 중 제1경. 영강의 맑은 물과 층암절벽, 철교와 도로교가 어우러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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