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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4박 5일 사진 여정 ⑮(완결)] 천 년의 기도를 쌓아 올린 어머니의 숲, 강릉 노추산 모정탑길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6일 전
3분 분량

어느덧 4박 5일간의 긴 여정을 갈무리하고 일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가슴과 뷰파인더 속에 가득 채워 넣은 풍경의 소득만큼은 참으로 묵직했다.   

하지만 이대로 곧장 집으로 향하기엔 못내 마음에 걸리는 곳이 하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누정을 쫓기 전, 내 렌즈가 가장 먼저 집요하게 매달렸던 피사체는 바로 이 땅의 '돌탑'들이었다. 20년 만에 다시 밟은 고국의 산천 어디를 가도, 산모퉁이나 계곡 어귀마다 민초들의 작고 소박한 염원을 얹어둔 아담한 돌탑들이 유독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작은 돌 하나에 기도를 얹어 큰 소망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를 온전히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다.   


오래전 지인이 귀띔해주었던 그곳, 강릉 왕산면의 '노추산 모정탑길(母情塔길)'. 이런저런 핑계로 몇 해 동안 쉬이 닿지 못했던 그 길을, 집으로 가는 길에서 조금 돌아갈지언정 이번 여행의 마침표로 삼기로 결심했다. 조금 우회하든 말든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발을 디뎌야만 했던 숙제 같은 곳이었다.   



노추산 자락 모정탑길 주차장에 닿으니 주변이 의외로 넓고 정갈하게 닦여 있었다.   

이곳은 고(故) 차순옥 할머니가 홀로 26년 세월 동안 무려 3,000개의 돌탑을 쌓아 올린 애틋하고도 처절한 사연이 서린 숲길이다. 결혼 후 4남매를 두었으나 아들 둘을 연이어 잃고 남편마저 중병을 앓는 등 집안의 우환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꿈결에 산신령으로부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시작된 고행의 여정이었다.   

세간에 입소문과 방송을 타며 널리 알려졌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마을 주민들에게 관리를 부탁하여 지금은 대기리 마을회에서 소중히 보존·관리하며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다만, 그토록 피눈물 나는 26년의 세월을 바쳐 쌓아 올린 돌탑 끝에 과연 할머니의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었는지에 대한 결말은 그 어디서도 명확히 들을 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못내 아릿했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서기 위해 맑은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이른 아침인 데다 마침 비까지 촉촉하게 내려 계곡과 흙길, 그리고 수천 개의 돌들이 짙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숲의 공기는 더없이 청량했으나, 흐린 하늘 아래 안개가 낮게 내려앉은 숲길의 분위기는 묘하게 스산했다.   


편도 1.2km, 왕복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 다행히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는 완만하고 평탄한 흙길이라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길 좌우로 거대한 돌탑들이 도열해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자, '한 사람이 어떻게 이 거대한 돌들을 홀로 다 쌓았을까' 하는 경이로움과 함께 일말의 의구심마저 스쳤다. 덩치만 거대하게 솟은 탑들은 그저 묵직한 위압감만 줄 뿐, 작은 디테일에 더 마음이 가는 내 렌즈를 선뜻 열지는 못했다.   



하지만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자연석의 굴곡을 하나하나 맞물려 마치 정교한 조각품처럼 쌓아 올린 자그마하고 기막힌 돌탑들이 끝없이 줄을 잇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지극한 정성이 깃든 예술품들이었다. 돌 하나를 얹을 때마다 삼켰을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가 층층이 배어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마저 숙연하게 물들였다.   

그러나 길은 점점 좁아지고 숲은 깊어졌다. 짙은 구름 탓에 숲속은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했고,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에서 거대한 돌탑들이 담장을 이룬 어두운 숲길을 홀로 걷고 있자니 등줄기에 서늘하고 오싹한 한기마저 감돌았다. 순간 발길을 돌려 빠져나가고 싶을 만큼 스산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두려움을 누르고 마침내 다다른 숲의 막바지, 차순옥 할머니가 생전에 거처하던 작은 움막 터가 나타났다.   

그 주변의 돌탑들은 그야말로 빈틈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너 마주한 집은, 집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만큼 작고 덧없는 나무 움막이었다. 거친 풍파를 홀로 견뎌내기엔 너무나 위태로워 보이는 단칸 공간. 집 앞 거대한 바위에는 생전 할머니의 온화하면서도 굳센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붙어 나그네를 맞고 있었다.   


문득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덧없는 생을 살아가며 천 년의 근심을 짊어지고 고뇌하는 인간사를 읊었던 옛 시인의 글귀가 뇌리를 스쳤다. 대체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기에 이 깊은 산골 골짜기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엄청난 고행의 삶을 택해야만 했을까. 그 모진 풍파를 홀로 견뎌내다 끝내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을 어머니의 삶을 헤아리니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져 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깊은 숲은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조차 버거웠다. 복잡하게 얽혀드는 감정과 무거운 공기에 눌려 서둘러 숲을 빠져나왔다.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길목, 저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여행객들의 인기척을 마주하니 그제야 참았던 숨이 터지듯 안도감과 반가움이 밀려왔다.   


맑은 날, 부드러운 숲의 빛이 돌탑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날을 택해 렌즈를 다시 겨누러 오리라 다짐해 본다.   


이로써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삼척을 거쳐 강릉의 깊은 골짜기까지 내달렸던 4박 5일간의 대장정이 모두 끝이 났다. 바다와 기암, 천년고찰과 옛 누정,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이 빚어낸 돌탑에 이르기까지. 길 위에서 셔터를 누르며 마주한 풍경들은 무거웠던 내 마음에 다시 살아갈 맑고 단단한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후련해진 마음으로, 내 소중한 일상이 기다리는 집으로 기분 좋게 차를 달린다.   


💡 노추산 모정탑길 탐방 정보

  • 명소 정보:

    • 위치: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716 (모정탑길 주차장). 입장료 및 주차료 무료.   

    • 코스: 주차장 → 징검다리 → 소나무 숲길/돌탑 군락 → 차순옥 할머니 움막 터 (편도 1.2km, 왕복 약 1시간~1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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