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행 둘째 날 6월의 눈보라,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맛본 대자연의 경외감
- Sangwon Jung
- 2019년 4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21일
6월의 눈보라,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맛본 대자연의 경외감
모텔 조식을 챙겨 먹고 오전 8시 5분경 길을 나섰다. I-90 웨스트를 타다 93번 북쪽 주도로로 접어들어 이번 여정의 첫 하이라이트인 '글레이셔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으로 향했다.
남한의 4배 크기에 인구는 백만 명도 안 되는 몬태나답게 사방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드문드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예쁜 집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남진의 '님과 함께'를 흥얼거리자 조수석의 아내가 빵 터진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빗방울이 떨어지고 하늘이 음산해져 괜히 시간만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폴슨(Polson)'이라는 마을에 접어들자 웅장하고 넓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고, 흐린 날씨 속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눈으로 보는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카메라 프레임 안에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가로서의 한계가 못내 아쉬울 뿐이다.
공원 입구인 '웨스트 글레이셔(West Glacier)'에 도착하니 이색적이게도 캐스케이드 산맥 너머 캐나다 앨버타주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국경 없이 하나의 거대한 자연으로 연결된 미국과 캐나다의 스케일이 피부로 와닿았다.
당시는 차량 한 대당 입장료가 10불이었는데 (2026년 현재는 연중 기준 차량당 35불로 인상되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 없이 산을 넘어가는 '고잉 투 더 선(Going-to-the-Sun Road)' 도로로 진입했다.
울창한 원시림을 지나 고도를 높이던 중, 갓길에 차들이 모여 있어 슬그머니 멈춰 섰다. 우리 차 바로 옆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유유히 구경하는 사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동물들이 도리어 사람을 구경하는 듯한 야릇한 시선. 문득 개리 위노그랜드의 사진집 《동물원(The Animals)》이 머릿속을 스쳤다.
❄️ 반바지 차림으로 마주한 6월의 눈보라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급변했다. 안개와 구름이 사방을 덮더니 이내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눈발로 바뀌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6월 말이라는 날씨만 믿고 반바지 차림으로 방심했던 우리 가족은 영하 5도에 육박하는 체감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다. 털파카로 중무장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덜덜 떨면서도, 창밖 풍경에 우리 가족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거대한 산 전체가 거대한 폭포인 양, 산정상의 빙하가 녹아내린 물줄기가 사방에서 굉음을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과 폭포, 만년설이 뒤엉킨 풍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장엄했다. 벼랑 끝 좁은 길을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원 없이 대자연의 현상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고지대 공포증이 있어 창밖을 보지도 못하고 빨리 가자고 우는 딸 예지와, 그런 누나를 놀려대는 아들 도희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감동도 잠시,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원에 거대한 번개가 떨어져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울창했던 산림이 황폐해졌다는 뉴스를 보며, 날씨 핑계로 셔터를 더 많이 누르지 못했던 그 순간이 두고두고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눈보라 치던 고개를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다시 해가 뜨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글레이셔 동쪽은 서쪽의 험준함과 달리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신기하게도 평소 자주 보던 까마귀 대신 한국인에게 길조인 '까치'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이번 여행에 좋은 행운이 따르려나 보다 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밀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오후 5시 30분경, 예정했던 목적지보다 170마일 정도 못 미친 '그레이트 폴스(Great Falls)'라는 도시에 일찍 여장을 풀었다. 어제의 모텔 대란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아내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내는 챙겨온 아이들의 공부거리를 배당한다.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우는 아이들. '대단하다, 한국 아줌마와 한국 아이들!' 피로가 몰려오는 낯선 모텔 방 안, 사발면을 나눠 먹는 우리 가족의 이 소박하고 치열한 일상이 참 고맙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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