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4박 5일 사진 여정 ①] 파도를 능멸하는 신비로운 바위, 고성 능파대
최종 수정일: 9월 8일
2025년은 내게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었던 한 해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줄곧 부모님을 모시느라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늘 무거운 짐을 진 듯 여의치 않던 나날들이 지나고,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다드린 뒤에야 비로소 홀로 설 시간이 찾아왔다.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있던 때, 스스로에게 작은 핑계를 대며 4박 5일간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실로 얼마 만에 나서는 긴 여정인지 모르겠다.
혼자 길을 나선 지 몇 해가 지나서인지 혼자 떠나는 길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목적지는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까지 푸른 동해안을 따라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셔터를 누르며 달려보기로 했다. 매번 짐을 싸 들고 숙소를 옮겨 다니는 번거로움이 질색이라, 동해시 묵호 쪽에 거점을 잡고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위아래로 오르내리기로 큰 틀을 짰다.

첫 기착지는 강원도 최북단 고성이다. 고성의 볼거리들을 찾아보던 중, 역시 내 오랜 시선은 어김없이 옛 누각(樓閣)들로 향했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청간정(淸澗亭)', 그리고 기암절벽 위에 앉은 '천학정(天鶴亭)'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청간정으로 향하는 길목, 아주 독특하고 멋진 바위 지형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바로 '능파대(凌波臺)'였다. 능파대를 시작으로 천학정과 청간정이 지척에 줄줄이 이어져 있으니, 능파대부터 들러보기로 망설임 없이 일정을 잡았다.
내가 있는 일산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길은 서울 도심을 뚫고 갈 때보다 언제나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고, 굳이 따져보고 싶지도 않다. 그저 달릴 뿐이다.
미국에 살던 시절엔 편도 5시간 넘는 거리도 동네 마실 가듯 훌쩍 떠나곤 했는데, 어느새 나도 한국의 도로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는지 이제는 편도 3시간만 넘어가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늘 머릿속에 '차가 막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게다. 다행히 출발한 날이 일요일 오전이라 상경하는 차량들과 반대로 동해로 향하는 길은 막힘없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170km 남짓한 거리를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11시 전에 능파대에 닿았다.

사실 '능파대'라는 이름은 내게 꽤 생소했다. 과거 한국에 있을 때는 장승 사진에만 오롯이 몰두하느라 유명 관광지나 남들이 다 가는 명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파로 북적이는 곳을 꺼리는 성향도 한몫했다. 그러다 미국 생활을 거치며 스톡 사진을 찍고 넓은 시야로 풍경을 담다 보니, 귀국 후에는 남들이 좋다는 명소도 열린 마음으로 찾게 되었다. 물론 차 막히는 주말 한낮이나 휴가철은 피한다는 나만의 철칙은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다 아는 곳을 뒤늦게 마주하며 오히려 갈 때마다 신선하고 새로운 설렘을 맛본다.
능파대는 암석 표면에 마치 벌집이나 곰보처럼 무수한 구멍이 뚫린 '타포니(Tafoni)' 지형이 해안을 따라 기묘하게 발달한 곳이다. 타포니 지형이라 하면 몇해전에 다녀온 진안 마이산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바닷가에서 이런 독특한 화강암 타포니 군락을 마주하니 색다른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능파대(凌波臺)'라는 이름은 조선 숙종 때 강원감사였던 이세화(李世華)가 이곳을 순시하다가, 거친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장관을 보고 "파도를 능멸하는(능히 헤쳐 나가는) 아름다운 바위"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 전해진다.
약 1억 8천만 년 전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이 오랜 세월 염분과 풍화 작용을 견뎌내며 빚어낸 이 기암괴석 지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바다에 떠 있던 외딴 섬(화도)이었으나, 모래톱이 쌓여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 지형이라는 점도 지질학적으로 흥미롭다.
바위 지형 전체의 규모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탐방로와 나무 데크 계단이 정갈하게 잘 놓여 있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도 구석구석 오르내리기 수월했다. 거친 파도와 기기묘묘한 바위의 질감이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끊임없이 새로운 호기심을 불어넣는다.
주변 문암항 일대는 배낚시 명소이자 투명한 수중 생태계를 즐기려는 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의 성지이기도 해서, 포구 주변으로 다이빙 숍과 낚싯배들이 활기찬 바다 풍경을 더해준다.
복잡했던 마음을 차가운 바닷바람에 털어내며 첫 기착지인 능파대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제 바로 인근에 자리한 관동의 옛 누각, 청간정과 천학정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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