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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4박 5일 사진 여정 ②] 절벽 위의 숨은 누정 '천학정'과 관동제일경 '청간정'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9월 8일
3분 분량

기묘한 타포니 바위가 인상적이었던 능파대를 뒤로하고 곧장 천학정(天鶴亭)으로 향했다.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지척이다. 큰길로 나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내비게이션 덕분에 낯선 초행길이라도 길 잃을 염려가 전혀 없다.  

능파대에서 조금 벗어나 달리다 보니, 길섶 수풀 사이로 '천학정'이라 굵직하게 새겨진 큼직한 표석이 눈에 들어왔다. 따로 마련된 전용 주차장은 보이지 않아 갓길 한쪽에 차를 대고 나지막한 오르막을 올랐다.  



'천학정(天鶴亭)'은 바다와 하늘, 거울 같은 수면에 정자가 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100년은 족히 넘었을 굽이치는 노송림과 발아래로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윽한 진경산수화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동해의 숨은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는데, 게으른 내 성정상 평생 이곳에서 찬란한 일출을 담을 날이 과연 있을까 싶어 혼자 픽 웃음이 났다.  


다만 이런 절경에 설 때마다 사진가의 눈에는 못내 남는 아쉬움이 하나 있다. 안전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정자 주변을 둘러친 현대식 울타리와 시설물들이다.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필수 장치임을 머리로는 백번 이해하면서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프레임에 걸리는 쇠 울타리는 누정 고유의 담백한 기품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늘 못내 눈에 거슬린다.  


전국을 돌며 전각과 누정을 찾아다닌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늘 느끼는 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누정을 앉힌 자리는 하나같이 그 일대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 산세와 물길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품을 고스란히 빌려 쓴 조상들의 풍류와 넉넉한 여유가 가슴 깊이 와닿는다.  



천학정의 소박한 운치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고성 여행의 핵심 목적지 중 하나였던 청간정(淸澗亭)으로 핸들을 틀었다. 속초 방향으로 남쪽을 향해 2.5km 남짓 달리면 닿는 가까운 거리다.  


천학정이 일제강점기(1931년)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세운 비교적 근대의 정자라면, 청간정은 그 뿌리가 아득히 깊은 유서 깊은 곳이자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구 유형문화재 제32호)이다.  



조선 문학의 거두 송강(松江)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그 빼어난 풍광을 읊었던 곳,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이 화폭에 그 장관을 담아냈던 곳이 바로 이곳 청간정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청간천과 푸른 동해 바다가 만나는 기암절벽 위에 우뚝 서 있어, 예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승경으로 칭송받아왔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간성군수가 중수한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말 갑신정변 때 불타 소실된 후 1920년대에 재건되었으나,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다시 한번 허물어지는 등 숱한 풍파를 겪었다. 지금의 정연한 누각 형태는 1980~1981년에 걸쳐 최규하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전면 해체 복원된 것이며, 정자 안쪽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한시 현판이 걸려 있다.  


청간정은 현판에 얽힌 내력도 흥미롭다. 정자 바깥에 걸린 현판은 원래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었으나 유실되었고, 지금 걸려 있는 것은 1928년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청파 전형윤이 다시 쓴 글씨다. 반면 누각 안쪽에 당당히 걸려 있는 현판은 1953년 보수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남긴 친필이다. 시대와 역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품은 채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셈이다.  




청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구조다. 2층에 올라 탁 트인 동해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지만, 진정한 멋은 언덕 아래 바닷가로 내려가 누각을 올려다볼 때 완성된다.  


바닷가 암반 지대로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나무 데크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해안 누각에 오려면 흙길을 헤매고 바위를 타넘어야 했는데, 요즘은 전국의 여행지가 정말 깔끔하고 쾌적하게 정돈되어 있어 묵직한 카메라를 메고 걷는 발걸음이 한결 편안하고 즐겁다.  


해변 모래톱과 거친 바위 위로 우뚝 솟은 청간정의 실루엣을 올려다보니,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우리 전통 목조건축의 당당한 아름다움이 새삼 가슴을 벅차게 한다.  


두 누정의 깊은 멋을 렌즈에 차곡차곡 담고, 이제 다음 행선지로 '백섬 해양 전망대'를 가볼 요량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흔한 해상 스카이워크 시설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에 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모처럼 떠나온 4박 5일의 여정이니 마음을 열고 들러보기로 했다. 청간정에서 다시 북쪽으로 차를 돌려 달려간다.  



💡 포토 트래블 가이드

  • 역사 정보:

    • 고성 천학정: 교암리 해안 절벽 위, 1931년 지방 유지들에 의해 건립. 정면 2칸, 측면 2칸의 소박한 홑처마 팔작지붕 정자.  

    • 고성 청간정: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제32호). 관동팔경 중 하나로 설악산과 동해가 조화를 이루는 고루(高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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