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강원도 4박 5일 사진 여정 ⑨] 자연 암반 위에 얹은 국보 누각, 삼척 죽서루와 진주관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10월 8일
2분 분량

추암 촛대바위와 해암정의 그윽한 정취를 마음에 담고, 삼척 죽서루(竹西樓)로 핸들을 돌렸다. 동해 추암에서 삼척 죽서루까지는 지척의 거리라 이동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발 전 손에 쥔 정보는 '국보로 지정된 관동팔경의 하나'라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나를 죽서루로 이끈 결정적인 이유는 국보라는 거창한 칭호나 관동팔경의 명성보다, 내 렌즈가 끊임없이 좇고 있는 우리 옛 '누정(樓亭)'이라는 점이었다.   


사전 조사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얼핏 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지 못했지만, 관동팔경이라는 타이틀과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득한 역사의 무게감은 국보 누각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죽서루 곁에는 최근 복원된 삼척도호부 관아의 핵심 건물인 객사 '진주관(眞珠館)'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사진가로서 둘러볼 가치가 차고 넘쳤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누각의 동쪽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대숲 안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아쉽게도 죽장사는 세월 속에 사라졌지만, 죽서루를 둘러싼 담장 곁의 싱그러운 대숲은 여전히 바람에 사각거리며 깊은 운치를 더한다.   


관동팔경에 속하는 대부분의 정자(총석정, 청간정, 낙산사 의상대, 경포대, 망양정, 월송정 등)가 푸른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있다면, 유일하게 죽서루만이 강을 끼고 벼랑 위에 서 있는 내륙의 누각이라는 점이 매우 특별하다.   


경내로 들어서니 평소 보아오던 소박한 정자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누각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웅장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거대한 누각은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한다.   



죽서루에서 사진가의 눈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바로 기둥과 바위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인위적으로 평평하게 터를 닦아 주춧돌을 놓은 것이 아니라, 땅 밑에서 솟아오른 거친 자연 암반(바위)을 그대로 둔 채 바위의 굴곡에 맞춰 나무 기둥 밑바닥을 깎아 맞춘 '그랭이 공법'으로 건물을 올렸다. 자연을 훼손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바위를 주춧돌 삼아 하나가 되도록 누각을 얹어 놓은 선조들의 건축 미학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주변에 자연스레 어우러진 아치형 바위와 기암괴석들이 웅장한 목조건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죽서루 벼랑 아래로는 푸른 오십천(五十川)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건너편 강변에서 깎아지른 절벽과 그 위에 얹힌 죽서루의 온전한 전경을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담아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누각이 강을 등지고 있는 데다 벼랑 주변으로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맞은편에서 전체를 조망할 만한 화각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오십천'이라는 이름도 참 신기하다. 강(江) 대신 '천(川)'자가 붙어 자그마한 동네 개천 같은 어감이 들지만, 태백 백병산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닿기까지 물길이 무려 50번이나 굽이굽이 휘돌아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굽이치는 물길을 굽어보고 선 누각의 입지는 가히 천혜의 절경이다.   



조선 시대 삼척도호부 관아의 으뜸 건물로,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묵어가던 숙소이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계신 한양 궁궐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던 위엄 있는 공간이다.   

삼척에 자리한 건물이 왜 '진주관'이라 불렸을까? 삼척의 옛 지명이 바로 '진주(眞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객사 이름에 집 관(館) 자를 쓰는 것과 달리, 이곳 현판에는 '볼 관(觀)' 자가 붙어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삼척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굽어보는 명승지라는 의미를 담아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그 또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행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 선조들의 담백한 숨결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의 지혜. 인터넷 화면 속 작은 썸네일 이미지만으로는 미처 짐작할 수 없었던 현장의 묵직한 감동이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잊지 못할 희열을 더해준다.   


💡 죽서루 & 진주관 관람 안내

  • 문화유산 정보:

    • 삼척 죽서루(국보): 강원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길 37. 조선 태종 3년(1403)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함.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으며, 2023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됨.   

    • 삼척도호부 관아지(진주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던 옛 관아 건물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최근 웅장하게 복원해 놓음.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