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엘파소의 아침, 뉴멕시코의 미사일 황야와 사진가를 향한 미소
- Sangwon Jung
- 7월 23일
- 2분 분량
🌵 멕시코의 숨결이 스민 엘파소(El Paso)의 아침

아침 공기는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하고 시원했다. 건조한 사막 기후 덕분에 습기가 없어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온몸에 선탠크림을 바르고 화이트샌드를 향해 기분 좋게 출발했다.
엘파소 시내는 겉보기엔 일반 대도시와 다름없이 평탄했지만, 거주민의 80% 이상이 멕시코계이고 언어 또한 스페인어가 주를 이루는 독특한 국경도시였다. 리오그란데강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멕시코 땅. 다녀온 이들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 같은 인프라의 격차를 느낀다고 했던 그 국경의 숨결이 피부로 전해져 왔다.
🐄 뉴멕시코(New Mexico) 진입과 얌전한 운전자들
엘파소를 벗어나 차머리를 돌리자 곧바로 뉴멕시코(New Mexico) 주경계가 나타났다.
집들은 다소 낡고 정돈되지 않아 첫인상은 소득 수준이 낮은 아담하고 가난한 주처럼 느껴졌다. 뉴멕시코 초입의 웰컴 휴게소(Visitor Information Center)에 들러 친절한 자원봉사자 노인분이 건네주는 지도와 관람 팜플렛을 챙겨 들었다.
도로변에는 특이하게도 초원에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대형 젖소 목장들이 길게 이어졌다. 2마일이 넘는 구간 동안 특유의 거친 분뇨 냄새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그 뒤로 펼쳐진 선인장과 사막 불모지의 정취가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는 점은 난폭운전이 기승을 부리던 플로리다나 동부와 달리, 이곳 뉴멕시코 운전자들은 제법 신사적이고 얌전하게 규정 속도를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 차가 상대적으로 과속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도로 분위기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 미사일 기지의 황야와 내륙 검문소의 '사진가'


사막지대를 달리다 보니 길가에 '미사일 박물관(Missile Museum)' 팻말과 함께 뷰 포인트(View Point)에 우뚝 서 있는 미사일 모형들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미 대륙의 최첨단 미사일 시험장이 이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숨어있음을 실감했다.
약 2시간을 달려 마침내 '화이트샌드 국립모뉴먼트(White Sands)' 입구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어제에 이어 고속도로 내륙 검문소가 가로막아 섰다.
성가신 마음을 누르고 검문관에게 여권을 건넸다. 여권 속 비자 항목에 적힌 취재 및 사진 관련 기록을 훑어보던 검문관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직업이 사진가(Photographer)입니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검문관의 무뚝뚝했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미소가 번지더니 기분 좋게 여권을 돌려주며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미국 사회에서 사진가를 비롯한 예술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존중받고 인정받는지를 다시금 체감하며 내심 뿌듯함이 밀려왔다.
정당한 신분과 비자가 있어 무사히 통과하긴 했지만, 불법체류자들에게는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촘촘하고 고약한 통제망을 실감했던 길목. 사막의 열기 속에서, 마침내 눈부시게 하얀 하얀 모래의 세계 '화이트샌드'의 문이 우리 가족 앞에 힘차게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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