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교동
- sajintour
- 2019년 11월 7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일 전

20년 만에 한국에 나와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그동안 여행다운 여행 한 번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강화도다.
강화에는 토박이 고등학교 친구가 산다. 이 친구 덕분에 어릴 적부터 강화는 자주 다녔다. 물론 늘 그 친구 집만 왔다 갔다 했을 뿐, 딱히 다른 곳을 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전등사나 마니산 정도. 나에게는 그 정도가 강화의 전부인 줄만 알았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 역시 강화였다. 당연히 친구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화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이전과 조금 다른 강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친구가 추천해 준 장소, 바로 '교동도'였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아니 상상 이상으로 볼거리와 이야기가 넘쳐났다. 강화의 다른 곳들은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찬찬히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친구 말로는 강화도 주변에 섬이 20여 개나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까지는 내가 알 길은 없다.
고려 말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로 옮긴 후, 수많은 이주민이 강화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간척 사업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교동도는 주변의 작은 섬들과 하나로 합쳐져 넓은 평야를 갖게 되었으며 지금과 같은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황해도 주민 3만여 명이 피난을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실향민이 되었고, 교동도는 자연스레 그들의 모여 사는 터전이 되었다. 교동도의 중심인 대룡시장은 이 실향민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대로 본떠 만든 곳이란다. 이제는 100명 남짓 남아 계신 실향민분들이 아직도 대룡시장 인근에 모여 살고 계신다고 한다.
대룡시장은 50여 년 동안 교동도의 경제 중심지였으나, 인구가 급감하면서 시장 규모도 크게 줄었다. 그러다 몇 년 전 교동대교가 개통하면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었고, 덕분에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했단다. 시간이 멈춘 듯한 1960~70년대의 풍경으로 찾아오는 이들의 아련한 추억을 살려주는 장소가 된 것이다.
시장의 규모 자체는 소박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눈길 닿는 곳마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40년 된 옛날 다방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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