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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비를 뚫고 다녀온 오레곤의 봄 마중: 이글 크릭(Eagle Creek) 트레일

  • sajintour
  • 2017년 3월 23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일 전

작년 10월 이후부터 내리던 비가 해가 바뀌고 꽃피는 봄이 왔는데도 연일 내린다. '시애틀에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친 듯이 내린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요행히도 아주 청명한 날씨가 되었다. 때마침 이날은 우리 사진 모임의 촬영 날이다.

날씨가 맑으니 기분도 절로 좋아졌다. 그런데 아침 기온은 생각보다 많이 낮았다. 마당에 뽀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것을 보니 제법 추운 날이다. 그래도 기분 좋게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레곤주 콜롬비아 협곡 주변의 폭포들이다. 이 지역 폭포는 웬만큼 다 돌아보았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있다니, 도대체 몇 개의 폭포가 이 지역에 숨어 있는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아무튼 늘 가던 길대로 차를 몰았다. 오레곤주로 접어드니 워싱턴주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든다. 기온도 한층 높고 주변 나무들의 푸르름도 사뭇 달랐다. 개나리 같은 노란 꽃들도 길가에 만발해 있어 이곳은 벌써 완연한 봄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I-84 고속도로를 달려 Exit 40으로 빠져나가니 바로 목적지가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글 크릭(Eagle Creek)'이다. 이곳 트레일 코스로 들어서면 크게 3개의 폭포를 만나게 된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폭포는 멧라코 폭포(Metlako Falls)이고, 두 번째 폭포가 펀치볼 폭포(Punchbowl Falls)다. 여기까지가 2마일 코스다. 마지막 폭포는 터널 폭포(Tunnel Falls)인데 무려 6마일을 더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트레일의 최종 목적지는 와텀 호수(Wahtum Lake)로, 무려 13마일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우리가 오늘 하루 만에 소화하기엔 너무 먼 길이라 Punchbowl Falls까지만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폭우로 길들이 많이 훼손되어 이 트레일은 우리가 가고자 했던 펀치볼 폭포 바로 위쪽까지만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무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출발한다. 주차장은 여지없이 수많은 차로 붐비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트레일 코스를 다녀보았지만 이곳은 조금 달라 보였다. 길도 꽤 좁은 편이다. 그 좁은 길 우측으로는 깊은 계곡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그 사이로 빠르게 계곡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반사된 주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동안 강수량이 워낙 많았던 탓인지 사방이 온통 폭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시원하게 물이 흘러내렸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길이 녹아 다소 질척거리긴 했지만, 걸어가는 기분만큼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길 폭이 좁다 보니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피할 길이 없었다. 비를 맞듯 물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계속 걸음을 옮긴다.


지난겨울에 눈이 워낙 많이 내렸던 모양이다. 아직도 곳곳에 흰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더워진 날씨와 계속 쏟아진 비 때문에 지반이 많이 약해진 듯했다. 협곡 가깝게 다가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들어가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데, 벌금을 떠나 생명과도 연관된 위험한 구간이라 쉽사리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는 길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은 코스다. 완만한 경사라 오르막을 오른다는 느낌조차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다만 불어난 물 때문에 간혹 신발이 물에 빠지기도 하고, 쓰러져 길을 막은 나무를 넘어가야 하는 소소한 장애물 코스가 있을 뿐이다.


한참을 가다가 첫 번째 폭포의 '뷰 포인트'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전망대나 뷰 포인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폭우에 표지판 주변 지형이 쓸려 나간 듯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비가 알게 모르게 현장에 많은 피해를 남긴 모양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다른 폭포 표지판이 나타난다. 출발지 안내판에서는 보지 못했던 폭포 이름이었다. 바로 '루윗 폭포(Loowit Falls)'다. 내리막길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폭포라 해서 내려가 보았다. 조금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폭포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계곡물 수준이었다. 간혹 이렇게 싱겁게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곳도 있다.^^ 그래도 물살만큼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빠른 속도로 계곡 아래를 향해 박차고 내려가고 있었다.


눈앞에 다가온 봄의 기운을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덧 펀치볼 폭포 앞에 다다랐다. 앞을 가로막은 나무들 때문에 폭포의 전체 모습을 깔끔하게 담아내기는 다소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이고 볼만한 풍경이었다. 그곳을 정면에서 제대로 프레임에 담으려면 철망을 넘어 건너가야 하는데, 걸리면 벌금이 300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니 다른 곳에서 보았던 거대한 폭포들에 비해 아주 독보적으로 뛰어난 풍경까지는 아니어 보였다. 그래서 '오늘 300불 벌었다' 생각하고 기분 좋게 철망을 넘어가지 않았다.^^


폭포를 지나 잠시 더 올라가다가 철수를 결정했다. 어느덧 시간도 훌륭히 흘러가 있었다. 거리에 비해 그리 힘들지 않고 가볍게 거닐다 온 듯하다. 이 모든 것이 화창하게 맞아준 날씨 덕분이 아닐까 싶다. 기분 좋게 발길을 돌려 하산한다. 앞으로는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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