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가득 피어난 흰빛의 장관: 라코너 스노우 구스(Snow Goose)
- sajintour
- 2017년 1월 1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시간 전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우리 사진 모임인 '포인트 6' 회원들과 함께 촬영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날씨가 상당히 춥다고 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예상보다 많은 회원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모임 장소로 나섰다.
이곳 날씨도 예전 같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과 추위가 몸과 마음을 웅크리게 만들었지만, 기분만큼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타코마에서 출발하는 회원 4명이 오롯이 모여 오전 10시 정각에 출발했다. 여름철과 달리 해가 짧아 일정이 제법 빡빡했지만, 가슴 설레는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I-5 고속도로 Exit 206 휴게소에서 북쪽에 계시는 회원분들과 만나기로 했다. 달리는 중간중간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도 조금은 걱정스러운데 눈까지 날리니 불안감이 더해졌다. 시애틀을 벗어나니 눈발이 더욱 거세지며 길가로 눈이 수북이 쌓여갔다. '이러다 촬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에버렛(Everett)을 지나자 눈은 잦아들고 하늘도 조금씩 열리는 듯하여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오전 11시 15분 무렵 Exit 206 휴게소에 들어서니 회원 세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워싱턴주 휴게소의 참 좋은 점은 매번 느끼지만 무료(Free) 커피 맛이 일품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오늘같이 추운 날 마시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은 몸과 마음을 사르르 녹여준다. 이곳 특유의 따뜻한 정을 깊이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따스한 커피를 나누어 마신 뒤 목적지인 라코너(La Conner) 입구를 향해 출발했다. 라코너로 들어가는 길은 Exit 221로 나가면 되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했다.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길을 나섰다. 라코너 입구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좌우로 넓은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드문드문 무리를 지은 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전 들러 감탄했던 새들의 장관을 다시 마주할 생각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라코너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왼쪽 벌판으로 어마어마한 무리의 새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스노우 구스(Snow Goose, 흰기러기)'들이었다. 차 안의 회원들 모두 난리가 났다. 사진 촬영을 다니다 보면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다행히도 입구 바로 옆에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카메라 장비를 챙겨 들고 빠른 걸음으로 새들에게 다가갔다. 'SKAGIT WILDLIFE RECREATION AREA'라는 표지판이 소박하게 서 있었다.
급한 마음에 새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가려 하자, 현장 안전요원이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다. 야생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를 놀라게 해서 일부러 날아오르게 하거나 기준 이상으로 가깝게 접근할 경우 226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자연과 야생동물을 진심으로 보호하려는 이들의 철저한 의식에 다시 한번 깊은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곳은 한 구역에 엄청난 수의 철새와 텃새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명소로 유명하다. 일년 중 1월에서 3월 사이가 가장 절정을 이루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요원들이 계속해서 순찰을 돈다. 현장에는 우리 외에도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름도 거룩한 '대포(초대형 망원렌즈)'로 무장한 채 사진을 담고 있었다.
조류나 야생동물 촬영은 가까이 접근할 수 없기에 이러한 초망원 렌즈가 제격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우리 회원님들은 주로 일반 풍경 사진을 담아왔던 터라 초망원 계열 렌즈를 가진 이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다소 열악한 장비를 든 채 당당하게 촬영을 시작했다.
몇 년 전에도 보았던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새들의 수가 유난히 더 많아 보였다. 저들끼리 무어라 소통하는지 지저귀는 소리가 시끌벅적했다. 땅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고, 날다가 다시 앉기를 반복하면서 무슨 신호라도 주고받듯 조금씩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해 갔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묘한 감흥이 밀려왔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음 같아서는 돌이라도 던지거나 소리를 질러 한꺼번에 날아오르게 만들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셔터만 연신 눌러댔다.
사진을 오래 해왔고 웬만한 촬영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조류 사진이 이렇게나 어렵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의 세계는 참으로 끝이 없는 듯하다.^^ 뷰파인더 너머로 바라보는 새들의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평생 태어나서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셔터를 눌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한 컷 한 컷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찰나를 잡아내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현장에서 몸소 깨달은 하루였다.
새들의 이동 궤적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새들이 모여 있는 가장 끝자락까지 다다랐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진 프레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다시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수천 마리, 아니 수만 마리는 족히 될 법한 새들이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카메라 뷰파인더 안이 빈틈도 없이 온통 흰 새들로 가득 찼다. 입에서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황홀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조그마한 뷰파인더 안에서 요동치는 새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초점을 맞추거나 구도를 잡을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 감격스러운 느낌 그대로라도 프레임에 담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절묘하고 짜릿한 전율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들은 조금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으로 모두 이동한 뒤였다. 방금 전 느꼈던 황홀한 여운이 가슴속에 아른아른 오래도록 남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이어간 후, 미련이 남아 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들도 여전히 아쉬움이 크게 남은 듯했다. 다시 라코너 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많던 새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 숨을 곳도 없는 벌판인데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가버린 것인지...^^
아주 멀리, 아까보다는 적지만 수많은 새가 모여 있는 모습이 아득하게 내다보였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듯했다. 회원들과 아쉬움을 달래며 철수를 결정했다.
오후 늦게 하늘이 맑게 열리면서 석양빛에 붉게 물든 마운트 베이커(Mt. Baker)와 슉산(Mt. Shuksan)의 봉우리가 웅장한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참으로 소중한 출사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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