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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도전 끝에 마주한 노스 캐스케이드의 겨울: 블루 레이크(Blue Lake)

sajintour
2016년 10월 21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9일

아주 오래전 사진 모임에서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 늘 꼭 한번 다시 찾아가고 싶었던 장소였다.

하지만 이 호수와의 재회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번의 도전이 기상 악화와 맞물리며 번번이 난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곳의 이름이 왜 '블루 레이크(Blue Lake)'인지를 첫 방문 때 정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호수 자체가 짙고 맑은 푸른빛 그 자체였다. 주변 산악 지형에 남아있던 잔설, 그리고 알록달록 적당하게 물든 가을색과 어우러져 그 감동이 배가 되었다. 그 강렬했던 감동을 잊지 못해 이번까지 무려 세 번을 더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20번 도로 선상에 위치해 있다. 워싱턴 패스(Washington Pass) 조금 못 미친 지점이다. 두 번째 방문은 첫 만남의 설렘을 가득 안고 올라갔다. 하지만 그날 마주한 것은 청색 호수가 아니라 온데간데없이 빛을 잃은 회색 호수뿐이었다.


날씨가 워낙 흐려 파란 하늘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탓이다. 파란 하늘의 색이 호수 수면에 그대로 반영되어 호수 전체가 마치 청색 잉크를 풀어놓은 듯 파랗게 보였던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힘겹게 올라갔으나 기대했던 비경을 마주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남은 날이었다.


그리고 몇 해 전 10월,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하며 다시 출발했다. 날씨가 무척 맑고 청쾌해서 출발하는 마음까지 한껏 설레었던 날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디아블로 댐(Diablo Dam)을 지나 워싱턴 패스 방향으로 가다 보니, 오던 길의 가을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한겨울 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로변에 어마어마하게 쌓인 눈은 둘째 치고 눈발까지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이 도로는 눈이 많이 내리는 기상 특성상 보통 11월부터 통제되는 구간으로 알고 있었다. 눈이 쌓여있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10월에 장대눈까지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결국 블루 레이크로 올라가는 트레일 입구는 눈이 너무 수북이 쌓여 진입조차 불가능했고, 그저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 번째 만남은 호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다행히 덕분에 워싱턴 패스에서 웅장한 겨울철 설경 풍경을 정성껏 프레임에 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둘째 주, 네 번째 만남을 기약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예년보다 한 주 일찍 서둘렀기에 은근한 기대를 품고 출발했다. 블루 레이크를 가기 전 거치는 뉴할렘(Newhalem) 마을은 워싱턴주에서도 손꼽히는 가을 단풍의 정취를 자랑하는 곳이다. 워낙 자주 들렀던 곳이라 이날은 쉬지 않고 바로 지나쳤다.


드디어 블루 레이크 트레일 입구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다소 궂어 걱정했는데, 막상 현장에 다다르니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청색 호수를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목적지까지는 한 시간 남짓, 편도 2.2마일, 왕복 4.4마일 정도의 코스로 아주 힘겹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적당한 산행길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올라가면서 발생했다. 중간 지점쯤 오르자 길에 쌓인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등산로 전체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이젠이나 스틱 같은 겨울 등반 장비를 전혀 챙겨 오지 않았던 터라, 내려갈 일이 벌써부터 까마득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깊은 한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미끌거리는 눈길을 힘겹게 밟으며 땀을 흘린 끝에, 마침내 호수 앞에 다다랐다. 호수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무척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그날도 내가 기억하던 그 '블루 레이크'의 색이 아니었다. 분명 하늘은 맑고 파란데 왜 호수 빛깔이 그때와 다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올라왔던 때도 늦가을 해 질 녘 무렵이었는데, 내 짧은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오묘한 자연 현상이었다.


그래도 두 번째 올라와서 보았던 밋밋한 회색 호수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광선 상태도 훌륭해서,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완벽한 청색 호수는 아닐지언정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셔터를 누르며 촬영을 이어가다 보니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강한 한기가 밀려왔다. 기온이 상당히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벗어두었던 패딩 점퍼를 다시 챙겨 입고 최선을 다해 프레임에 풍경을 담은 뒤 하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수년에 걸쳐 마음 한구석에 품어두었던 블루 레이크와의 네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완벽하게 원하는 프레임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가슴 뿌듯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세 번이나 찧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듬뿍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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