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로 다가온 만년설과 사방으로 터진 4대 명산의 장관: 워싱턴주 하이락
- sajintour
- 2016년 8월 3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워싱턴주의 대표 명물인 마운트 레이니어(Mt. Rainier)다. 우리말로 '눈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명산으로, 산 정상은 일년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다.
같은 사진 모임에 계신 분 중에 유난히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 그분께서 어느 날 마운트 레이니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그 후로 늘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어왔다.
그러다 마침내 도전에 나섰다. 첫 번째 도전은 6월 초였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목의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7월 셋째 주, 사진 모임 출사로 다시 한번 재도전에 나섰다.
타코마(Tacoma)에서 가까운 곳이라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오전 10시 30분에 모여 유유히 출발했다. 그동안 날씨가 워낙 좋았던 터라 이번에는 눈 걱정이 전혀 없었다.
마운트 레이니어는 그동안 수차례 찾아가 본 곳이다. 하지만 제대로 정복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일반 관광객처럼 파라다이스(Paradise)나 선라이즈(Sunrise)까지 차로 올라가 가벼운 코스로 잠깐 둘러보고 오는 게 전부였다. 워낙 산을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늘 가능하면 편하고 빠른 방법만 찾았다. 한마디로 '수박 겉핥기식' 탐방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레이니어의 참모습을 제대로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열망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레이니어의 풍경 역시 여러 제약 때문에 온전히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마침내 오늘, 레이니어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는 '하이락(High Rock)'을 찾아가 보았다. 타코마에서 7번 도로를 타다가 레이니어 방향 706번 도로로 접어들어 계속 올라간다. 애시포드(Ashford) 마을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다 오른쪽 비포장길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었다. 이곳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찾아가기가 다소 까다로운 길이다.
우회전하자마자 곧바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입구부터 하이락 주차장까지는 약 9마일 거리다. 길목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 있는 작은 표지판이 반가울 뿐, 결코 짧지 않은 오프로드 길이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다. 폭이 좁은 데다 중간중간 오목하게 파여 나간 노면이 상당히 많았다. 지난겨울 폭설에 쓰러져 도로를 막았던 나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치워놓긴 했지만, 지난겨울의 혹독했던 기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비포장길을 달리다 보면 두 번의 갈림길이 나온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는 왼쪽 길을 선택해 계속 달리고, 두 번째 삼거리에서는 오르막으로 연결되는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차를 몇 대 댈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나타난다. 정식 주차장이라 부르기엔 다소 협소해서, 방문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주차하기가 꽤나 곤란해질 것 같았다. 이곳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약 1.3마일, 왕복으로 3마일 남짓 되는 산행 코스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짧은 거리임에도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최근 촬영도 많이 못 한 데다 운동도 소홀했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차를 세우고 나서도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곳 역시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전혀 없었다. 초행길 방문객에게는 참 야속한 장소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분들이 아니라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도착해보니 나지막한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겨우 빈틈을 찾아 차를 주차하고 등산 채비를 마쳤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등산로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길 폭이 너무 좁아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한쪽이 무조건 걸음을 멈추고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등산로 양옆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산등성이의 아슬아슬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길 양옆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시각적으로는 아찔함보다 안도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계속 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 숨이 차오르는 가파른 구간도 나오지만, 산행 초보자의 기준에서도 못 오를 정도로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걸어 올라가는 중간중간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레이니어의 자태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레이니어산이 내 눈높이와 비슷하게 마주 보이는 것이 참 신기하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정상까지 약 0.3마일을 남겨둔 지점에 이르자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을 이루었다. 왼쪽으로는 마운트 레이니어, 오른쪽으로는 마운트 아담스(Mt. Adams)가 마치 좌청룡 우백호처럼 웅장하게 포진해 있었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까마득한 풍경에 절로 아찔함이 밀려왔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떼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뒤 마지막 힘을 내어 올라가니 마침내 정상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또 한 번 아찔하고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막힘없이 탁 트인 전경 한가운데 웅장한 마운트 레이니어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는 장관이었다. 바로 아래는 끝없이 아득한 절벽이라 나도 모르게 몸을 엉거주춤 구부리게 되었다.
이윽고 도달한 정상은 거친 바위들이 가파르게 솟아있는 바위산이었다. 그리고 그 맨 꼭대기에 정겹고 소박한 흰색 목조 건물이 한 채 서 있었다. 바로 산불 감시초소인 '룩아웃(Lookout)'이었다. 그 안에 들어서니 사방의 풍경이 한눈에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떻게 이 까마득한 절벽 끝에 이런 집을 지어 놓았을까' 싶을 만큼 신기하기만 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정상에 올라와 지나온 고된 산행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고 올라오다 보니 정상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걸린 듯했다. 막상 올라와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고난도의 코스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비로소 깊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힘든 고비를 넘어 정상에 선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환희가 가슴 깊이 밀려왔다.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온 회원 한 분이 배낭에서 커다란 수박 한 통을 꺼내신 것이다. 크기도 엄청나게 커서 정상까지 지고 올라오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텐데, 회원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자처하신 것이었다. 이틀 전부터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해 온 수박이라 하셨다. 그래서인지 긴 산행 뒤에도 시원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들어간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은 내 평생 먹어본 수박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눈앞의 절경에 감탄하고, 시원한 수박 맛에 감탄하고, 이 무거운 수박을 정상까지 지고 올라오신 회원분의 정성에 감탄하며, 말 그대로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 순간이었다.
숨을 가다듬고 사방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마운트 레이니어는 물론이고 아담스산, 그리고 눈이 깔끔하게 녹은 마운트 세인트헬렌스(Mt. St. Helens)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멀리 오레곤주에 있는 마운트 후드(Mt. Hood)까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방으로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하나도 없어 더없이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해 질 녘 느지막이 올라와 멋진 석양을 프레임에 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품게 되었다.
최고의 비경을 최고의 조건 속에서 마주했던, 참으로 감회가 깊고 소중한 출사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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