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와 온대 우림, 거친 태평양이 빚어낸 대자연의 서사시: 워싱턴주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최종 수정일: 8월 9일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은 1938년 올림픽 산맥과 이곳의 풍부한 삼림 지역 및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며, 1981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명소이기도 하다. 미국 북서쪽 올림픽 반도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크기로 보아도 미국 국립공원 중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기후와 성격을 지녀 마치 태초의 원시 지역을 방불케 한다.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단일 지형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지만, 올림픽 국립공원은 빙하, 만년설, 정글, 해변, 초원, 스키, 온천 등 상반된 다양한 풍경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공원이다. 한마디로 산악과 해안, 울창한 산림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곳이라 할 수 있다. 공원 중앙에는 최고봉인 올림푸스산(2,428m)이 우뚝 솟아 있고, 60여 개의 빙하를 품은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또한 빙하에서 발원한 11개의 강이 흐르며, 태평양 연안의 거대한 알래스카 노송과 침엽수림, 그리고 원시의 숲속에는 붉은사슴과 아메리칸 흑곰 등이 야생의 숨결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해안가의 아름다운 낚시 포인트로도 무척 유명하다.
올림픽 국립공원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가장 대표적인 산악 구역으로, 포트앤젤레스(Port Angeles)를 거쳐 올라가는 '허리케인 릿지(Hurricane Ridge)' 다. 해발 5,800ft(1,767m)에 달하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허리케인 릿지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른 약 18mile(29km)의 코스다. 길을 오르는 중간중간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포트앤젤레스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마침내 하이라이트인 허리케인 릿지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올림픽 산맥의 파노라마 전경은 마치 유럽의 알프스를 마주한 듯 웅장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런 장관을 온전히 담아내려면 화창한 날씨가 따라주어야 하지만, 이곳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다우지인 만큼 맑은 하늘을 마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기후 조건을 고려할 때 최적의 방문 시기는 단연 5월부터 8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적당한 설경과 푸른 녹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절묘한 계절이다. '허리케인'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겨울철에는 시속 100mile (161km)이 넘는 강한 폭풍이 불어대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곳곳에는 총연장 600mile(966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가 갖추어져 있어 가족 나들이나 가벼운 산책 코스로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8월 말경에는 만발한 야생화가 장관을 이루지만, 고산지대 특성상 꽃이 금방 지므로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올라가는 도로 중간중간 트레킹 코스를 활용해 한여름의 야생화를 만끽하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다.
두 번째 구역은 '크레센트 호수(Lake Crescent)'와 '솔덕 온천(Sol Duc Hot Springs)'이다. 포트앤젤레스에서 서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산으로 둘러싸인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처럼 넓고 투명한 이 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휴양 시설이 들어서 있어 휴가철이면 수많은 피서객으로 붐빈다. 한편 노천 온천인 솔덕은 우리 교민들에게도 무척 친숙한 장소다. '솔덕(Sol Duc)'은 인디언 말로 '불꽃처럼 튀는 물'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간단한 코스부터 깊은 산길까지 다양한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어, 트레킹 후 즐기는 야외 온천욕은 감히 최고라 장담할 수 있다.
세 번째 구역은 바로 '호 우림(Hoh Rain Forest)'이다. 라 푸시(La Push) 남동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공원 내 우림지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울창한 원시림이다. 태평양의 차가운 캘리포니아 해류 영향으로 발생한 습한 공기가 올림픽 산맥과 부딪히면서 엄청난 양의 비를 뿌려 세계적인 다우지를 형성한다. 이 빗물이 고지대에는 빙하를 만들고, 저지대에는 온대 우림을 만들어내는데 이렇게 형성된 결정체가 바로 호 우림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전나무, 삼목, 가문비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그 자체로 태초의 숲을 이룬다. 연강수량이 워낙 많다 보니 나무 가지마다 빨래처럼 늘어뜨려진 푸른 이끼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네 번째 구역은 해안가 지대다. 앞서 소개했던 쉬쉬 비치(Shi Shi Beach), 루비 비치(Ruby Beach), 그리고 아직 풀어놓지 않은 라 푸시(La Push) 해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라 푸시의 풍경은 다음 기회에 차분히 다뤄보기로 하자.
자, 그럼 호 우림을 향해 출발해 보자. 타코마나 시애틀 지역에서 출발할 경우, 시애틀 북쪽에서 페리를 타고 포트앤젤레스를 거치는 방법과 육로를 통해 101번 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호 우림이 공원 남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타코마 기준으로는 올림피아(Olympia)를 거쳐 101번 도로로 진입하는 육로 코스가 이동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어 훨씬 유리하다.
거리는 타코마에서 출발할 경우 약 180mile(289km)정도다. 해가 긴 여름철이라면 서둘러 호 우림과 라 푸시, 허리케인 릿지까지 하루 만에 둘러볼 수도 있겠지만,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호 우림 한 곳만 다녀오기에도 일정이 빡빡하다. 여름철은 날씨가 건조해 이끼의 생기가 다소 떨어지고 모기들의 공격으로 고생할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물을 머금은 싱싱하고 푸르른 이끼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 겨울철에는 쉼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나 뜻밖의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출발 전 기상 상황과 공원 도로 사정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타코마에서 I-5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주도인 올림피아를 지나자마자 Exit 104로 나와 8번 도로로 갈아탄다. 약 6mile(9.6km) 달리다 보면 101번 도로와 만나는데, 여기서 북쪽으로 빠지면 포트앤젤레스로 가버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계속 직진하여 12번 도로를 타고 애버딘(Aberdeen) 방향, 즉 오션 쇼어스(Ocean Shores)로 향하는 길로 나아간다.
다소 지루한 드라이브가 이어질 수 있지만, 65mile(104km) 남짓 달리다 보면 마침내 태평양 연안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만난다. 약 10mile 구간 동안 비치 1부터 루비 비치까지 7개의 해변이 연달아 나타나며 워싱턴 바다의 정취를 가득 안겨준다.
루비 비치를 지나 약 36mile을 더 올라가면 마침내 호 우림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비지터 센터까지는 약 19mile의 숲길이 이어진다. 진입로 변으로 펼쳐지는 야생의 강줄기와 웅장한 원시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 과연 이래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깊은 숲속 주차장에 다다르면 그곳이 바로 탐방의 중심인 비지터 센터다. 어느 국립공원을 가든 비지터 센터를 먼저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장소에 담긴 역사와 생태 이야기가 모두 모여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 정보는 물론, 소소한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지터 센터를 들어섰다 나오면 아늑한 탐방로 오솔길이 시작된다. 산행 장비를 제대로 갖춘 탐방객이라면 장거리 트레킹에 도전해 볼 만하다. 이곳에서 출발해 솔덕 온천은 물론 허리케인 릿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행 코스가 연결되어 있다. 솔덕 온천까지는 약 25mile(40km), 허리케인 릿지까지는 무려 42mile(67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백패킹 장비를 갖춘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엄두를 내기 힘든 코스지만, 일반 방문객들을 위해 주변을 한 바퀴 순환하는 가벼운 루프(Loop) 트레일도 잘 갖추어져 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약 40분 정도 소요되는 무난한 코스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과 나지막한 오르내리막이 어우러진 오솔길은 가족과 함께 걷기에 더없이 훌륭한 산책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닐면서도 호 우림의 진면목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맑고 투명하게 흐르는 계곡물, 인위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원시림 그 자체의 생명력, 융단이나 커튼처럼 나뭇가지마다 길게 늘어진 푸른 이끼,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거대한 고목들까지... 다양한 자연의 생태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우림은 그 자체로 최고의 자연 학습장이다.
숲을 이루는 주종은 주로 전나무와 삼목, 가문비나무들이며, 가지마다 푸른 이끼와 착생식물들이 층층이 덮여있다. 탐방로 전체가 마치 아마존 정글 한가운데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곳 나무들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뿌리가 깊지 않다는 점이다. 줄기와 이끼를 통해 공기 중의 습기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다 보니 뿌리를 깊게 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강풍이나 사소한 충격에도 나무들이 잘 쓰러지곤 한다. 하지만 쓰러진 거목은 또 다른 식물들의 밑거름(Nurse Log)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고, 썩고 사라지면서 지금의 신비롭고 오묘한 원시림 풍경을 이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세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겨울 시애틀 지역에 내린 기습적인 폭설로 애를 먹었던 기억도 스쳐 지나간다. 이러한 시대에 올림픽 국립공원은 우리에게 자연의 숭고함과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참으로 귀한 유산이다. 비록 짧은 코스를 걸었을 뿐이지만 몸과 마음이 청량하게 정화됨을 느낀다. 이토록 위대한 자연 자원을 품고 살아가는 워싱턴주 주민들의 자부심이 기분 좋게 전해져 오는 여정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