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날씨는 맑았다. 어젯밤에 비가 왔는지 밤에 에어컨을 끄고 잤는데도 덥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다. 버지니아부터 조지아까지는 도로에 키가 큰 나무들이 서있어 사방이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답답했다. 한마디로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갈 뿐이다. 진짜 최악의 드라이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 지역은 기름값도 서부 지역보다 많이 쌌고 특히 담뱃값은 너무 차이가 날 정도로 쌌다. 워싱턴 지역은 말보로(Malboro) 한 값에 세금까지 하면 약 5불 정도 한다. (지금은 10불이 넘는다) 뉴욕 시에서 보니까 6불 50이었다. 그런데 버지니아나 오늘 우리가 지나온 주들의 담뱃값은 세금까지 다해서 2불 70센트 정도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곳에서 담배를 사서 워싱턴 주에 갖다 팔면 많이 남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것도 못하는 것이 담배마다 각 주에서 발행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어 다른 주에서 판매를 못한다고 한다. 팔다가 걸리면 문제가 심각해진단다.
노스 캘로라이나와 사우스 캘로라이나는 무척 덥다. 특히 사우스 캘로라이나 휴게소는 엄청 지 저분 하다. 청소차가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다녀도 금방 더러워진다. 휴게소에 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부 지역의 타 주 사람들인데 문제가 많아 보인다.
기온이 32도 정도 되었다. 이젠 계속 더워질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 된다. 조지아를 백마일 정도 남겨 두고 집사람하고 운전을 교대했다. 조지아부터 내가 하기로 하고 조수석에 앉아 자고 있는데 비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린다. 번개도 치고 천둥도 치면서 심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는 언제 그칠지 모를 정도로 퍼붓는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라 운전자들이 대비를 못해서 여기저기 많은 사고가 났다. 갓길 밖으로 차들이 빠져있다. 그러다 금방 그친다. 조금 가다 보니 저 멀리에서 비 내리는 것이 보인다. 우리 쪽은 아직 오질 않는데 말이다. 조금은 신기했다. 조금 달리자 우리도 비가 오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또 퍼붓는다. 우리 차도 심하게 흔들린다. 아무튼 미국이란 나라는 땅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내일도 비가 온다면 정말 큰일인데 걱정이다.
플로리다로 들어오자 날씨는 잠잠해졌다. 플로리다부터 도로가 넓어지면서 남쪽 지역의 색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상당히 기대를 하고 온 곳이라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흥분이 된다.
플로리다 입구에 있는 레스트 에리아에 플로리다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너무 늦게 와서 인지 문이 닫혀 있다. 창문 너머로 안을 보니 많은 관광자료가 비치되어 있다. 아쉬웠다. 특히 처음 오는 지역에서는 이런 자료가 많은 도움을 주는데, 안타까웠다.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규모가 상당히 큰 Jacksonville이라는 도시에 예약을 해둔 모텔에 들어왔다. 모텔들만 몰려 있는 타운 지역이었다. 예약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잘 몰라 조금 걱정될 때가 있다. 위험 지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심 외곽 지역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 미국의 도심 주변은 위험요소가 많은 곳이 많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직장인들이 다들 퇴근한 저녁엔 노숙자나 마약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 이번에 묵을 모텔도 가다 보니 도심을 거쳐 외곽으로 조금 나가자마자 있었다. 걱정이 되었는데 모텔이 몰려 있는 모텔 입구를 보고 조금 마음을 놓는다. 안심을 하고 우리가 예약한 모텔을 찾아 들어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시는 들어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모텔 6였다. 오면서 알아본 다른 모텔들은 다들 빈방이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예약한 모텔이다. 모텔 오피스에 들어가니 흑인 할머니가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에어컨을 강하게 틀었는지 사무실 안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예지가 추운 표정을 지으면서 할머니에게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에어컨을 약으로 줄여 달라고 한다. 체크인 하고 배정된 방으로 갔다. 그런데 이거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흑인들을 보기가 정말 어렵다. 가뭄에 콩 나듯 간혹 한두 명 보일 뿐 정말 보기 힘들다. 특히 서부 지역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오늘 들어온 모텔엔 숙박 객이 대부분이 흑인이었다.
정크 모텔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더욱 이상한 것은 여행객 같지는 않았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더 웃기는 일은 얼음을 가지러 아이스 머신으로 가다 보니 우리 방의 반대쪽 건물엔 모두 백인들이 투숙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묵을 방을 흑인들이 많이 투숙한 곳으로 배정한 모양이다. 좀 기분이 상했다. 모텔도 인종차별하나 싶어서 말이다. 내가 웃으면서 흑인들 모두 플로리다에 놀러 와있어서 다른 지역에선 보질 못했나 보다 했더니 집사람이 웃는다.
그러나 솔직히 오늘밤이 걱정은 되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이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독립기념일에는 다른 날에 비해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한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사람도 많고, 밤새 폭죽을 터트리며 광란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생기는 사고다. 우리가 모텔에 들어간 시간에도 조금씩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틈으로 자꾸 시선이 간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긴 좀 그렇지만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온통 흑인들만 주변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더욱 불안했던 건 우리가 모텔 오피스에 들어가 체크인을 한 후 바로 사무실 문이 잠기고 모텔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한 듯한 보안요원이 총을 차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처음엔 방이 다 차서 사무실을 닫았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사무실 문을 닫고 저녁 늦게 오는 모텔 손님들을 위해 방탄유리로 된 조그만 창과 아래로 작은 구멍이 있는 창구를 따로 오픈한 것이다.
평상시 얼마나 사고가 나면 이런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에선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섬뜩했다. 사람들 또한 날이 날인지라 그런지 방에 가만히 있지를 않고 왔다 갔다 한다.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아이들한테 영향을 줄까 봐 태연한 척하고 있는 게 더 힘들다.
밤이 깊어지자 폭죽 소리가 요란하다. 이들은 독립기념일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폭죽을 사서 터트린다. 자신들의 기념일을 자축하면서 미 전역이 축제의 밤을 지새운다. 우리가 사는 워싱턴 주에 아는 사람이 정크 모텔을 하는데 그곳에선 독립기념일에 투숙한 손님들에게 바비큐 파티나 간단한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 독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런데 이곳은 아무런 소식도 없다. 이래저래 7월 4일 밤은 정말 시끄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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